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7)과잉생산 위기…'왓 위민 원트' ⑭페트로 달러와 스테이블코인(2) 달러의 '신시장'은 어딜까
2025년 11월 기준 美국가부채 38조달러 넘어… 1년새 2조1800억 달러 증가 빚 더미 어떻게 풀까 …달러 풀어 超인플레 만들거나 달러쓰는 나라 늘릴수도 은행이나 기업이 달러를 기반으로 한 전자 화폐를 만들면 달러의 수요처 늘어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상식을 넘어선다. 어떻게 될까?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최악은 디폴트 선언. 하지만 그 가능성은 적다. 그보다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부채 탕감' 효과를 얻거나 아니면 달러의 새로운 수요처, 즉 신시장을 개척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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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상품'을 받아들이자. 그럼 '화폐의 과잉생산'이라는 상품의 특성도 받아들이게 된다. '화폐의 과잉생산'이라는 용법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를 '화폐의 과다 발행'이나 '화폐의 남발' 등의 용법으로 여기면 이해가 쉽다. 이때의 '과잉'이란 의미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화폐 추가 발행과 그로 인한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국가부채는 용인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화폐의 추가 발행 정도가 선을 넘을 수 있다. 이때는 '과잉'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화폐의 과잉생산'은 심각한 폐해를 불러온다. 인플레이션의 정도나 국가부채가 그 나라 국민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선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 이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나 국가부도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위기가 다른 나라나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국가부채에 전 세계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2025년 11월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가 38조9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1년 새 2조1800억 달러, 약 6% 늘었다. 2024년 기준 미국 GDP가 대략 29조2000억 달러 수준이니 GDP 대비로 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GDP의 130%를 넘는다. 연간 부담해야 할 이자만 1조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누가 봐도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감당하기 어렵다.
■ 달러의 궁극적인 길 '세계 단일 통화'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또는 풀 수 있을까? 몇 가지 시나리오를 보자.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자도 원금도 못 주니 배 째라" 하는 상황이다. 미국 국채는 그야말로 휴지 조각이 될 테고 세계경제는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있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행정부는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금 1온스=35달러 교환'을 기반으로 한 브레튼우즈 협정의 일방적 파기였다. 역사는 이를 '닉슨쇼크'라 이름 붙였다.
트럼프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는 '트럼프쇼크'도 나올 수 있을까? 2025년 11월 현재, 다행히,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2020년과 2024년 미국 대선 때 이 글을 썼다면 그 가능성에 대해 "적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2020년 대선 때 트럼프는 국가부채 해결 방식 중 하나로 '국채 할인 매수'를 제시했다. 3년 전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에 말했던 '100년 무이자 채권 판매'는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를 '공식적'은 아니라 해도 '실질적'인 디폴트 선언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세계경제는 다시 한번 난리가 날 법하다. 주요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기는커녕 있는 것도 던질 테니까. 그다음 벌어질 일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둘째, '최악'보다는 좀 났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나쁜 길' 시나리오다. 미국이 세계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금리를 내리고 '무한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돈을 '왕창' 풀면 가능하다. 이건 팬데믹 때 이미 '간'을 봤다. 이게 본격화되면,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는 쑥대밭이 된다. 빵 하나에 100만 원인 세상을 그려 보라. 빵 10개면 1000만 원 빚을 갚는다. 미국의 국가부채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국가부채는, 나아가 기업이나 가계 부채도 그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의한 부채 털기'의 전형인 것이다. 물론 중산층의 붕괴와 임금 및 연금 생활자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셋째, 상대적으로, '좋은 길'도 있다. '달러'라는 '상품'의 새로운 수요처, 즉 신(新)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빚을 갚는 전략'이 아니라 '빚을 더 얻는 전략'이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잘하면 그 '한계'를 크게 늘릴 수 있고, 더 잘하면 그 '한계'를 없앨 수도 있어 매력적이다. 필자 생각에, 여기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달러를 합법적 통화로 쓰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제 규모가 되는 나라가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법정 통화로 쓰면 달러의 수요는 눈에 띄게 커진다.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은 물론 더 많은 빚을 낼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 하비에르 G. 밀레이(Javier G. Milei)의 정책이 눈에 띄는 이유다. 필자는 오래전에도 이 방식을 미국의 부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는 이 한 가지 방식뿐이었다.
그런데 2025년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가 막힌 방법을 제시했다.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민간 은행이나 기업이 달러를 기반으로 한 전자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킨다는 얘기다. 이 역시 달러의 수요처를 늘리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해 내기 어려운 발상이었다. 상당한 기술 발전과 인식의 확산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가능해 보인다. 그만큼 전자화폐 관련 기술은 발전했고 인식도 확산된 덕이다.
달러의 수요처를 늘리는 이 두 가지 방식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긍정적이다. 미국의 '디폴트'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생각해 보라. 그 이후 일은 상상하기 싫은 게 아니라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도 이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달러는 신세계를 맞는다. '세계 단일통화'라는 길을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달리는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진다. 달러를 법정 통화로 쓰는 나라는 물론 스테이블 코인의 사용량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게 쉽지 않다. 다른 나라가 가만있을 리 없다. 자칫 통화 주권을 잃을 수도 있다. 이제 세계는 지혜로워야 한다. 1971년 '닉슨쇼크'와 그 뒤 일어났던 대혼란, 그리고 미국이 달러 패권을 되찾은 '페트로달러 체제'의 구축 과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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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