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8) 머플러의 역사와 히잡

목과 머리를 무엇으로 가리기 시작한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어 아마도 추위와 모래·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 이란 팔레비 왕들은 '여성인권 해방'을 개혁의 중심에 둬 히잡 착용 불허 최근엔 히잡이 패션쇼에 등장…히잡 '쓸 자유'와'벗을 자유' 모두 존중을

2025-11-05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사건이다. 2023년 10월 7일부터 지금까지 그 끝이 모호한 가운데 계속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도 그렇다.

수많은 민간인 사망과 인질, 식량 부족, 대규모 피난민 등 인도주의를 파괴하는 행태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포탄 공습을 받으면서도 아이를 품고 '히잡'을 고쳐 쓰며 피난길에 오르는 여성의 모습이 특별히 눈에 들어왔다. 알다시피 히잡은 이슬람 여인들의 전통 의상 중 하나다. 여성은 '정숙을 위해 가슴과 머리를 가리라'는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목과 머리를 무엇으로 가리기 시작한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다. 아마도 추위와 모래·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족국가가 형성되고 남성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권력은 늘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통제 수단의 하나가 바로 한 장의 천으로 머리를 가리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럴 듯한 수사가 따라다녔다. 종교적 의미였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 한 장의 천이 '히잡'으로 변신한 것처럼, 기독교·유대교 전통에서도, 여성의 머리 가리기는 강요되어 왔었다. 오늘날까지도 천주교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순결함과 경건함을 표현하고, 동정과 순결함을 의미한다며 '미사포'로 머리를 덮는다. 물론 강요는 아니고 자율적인 것이라고 한다. 허나 따지고 보면 이런 행태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하던 관습의 연속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 중동 사태를 통해 히잡을 볼 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지금의 히잡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다.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정체성이 어려 있다.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 외세 개입, 여성의 위치 논쟁 속에서 히잡은 '여성의 몸'을 둘러싼 정치화된 상징물로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희잡을 쓸 자유'와 '희잡을 벗을 자유' 모두가 중동지역 사회의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히잡이라는 한 장의 천이 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힘을 발휘한 구체적 사례가 있다. 바로 이란이다. 이란의 역사를 통해 히잡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1925년을 시작으로 이란의 팔레비 왕들은 대를 이으며 이란의 근대화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여러 정책들 가운데 여성의 인권 해방을 개혁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가시적 상징성이 큰 히잡을 벗기고자 했다. 공공 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하였다.

하지만 히잡을 벗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의 강한 반발과 여성 자신들조차 오랜 세월 삶의 하나가 된 희잡을 쉽게 벗지 못했다. 거센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히잡 착용을 자유화하는 단계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1963년 '백색혁명'으로 여성의 인권이 정치적, 법적으로 인정되면서 여성들이 자연스레 히잡을 벗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79년 팔레비 왕가가 몰락하고 이란혁명이 성공하면서 히잡은 또다시 역사적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팔레비 왕 축출에 함께했다. 히잡이 정치적으로 저항의 상징물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혁명이 성공하여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탄생했다.

이슬람 국가로 재탄생한 이란은 국가의 기본 이념을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두었다. 따라서 꾸란을 들고 나오며 여성의 희잡 착용을 강요했다. 길거리 또는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체포하는 것은 물론 태형 74대, 징역, 또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도덕경찰'까지 동원해 여성의 머리카락이 보이기만 해도 체포, 연행하는 강경책을 쓰고 있다.

아라비아반도는 80% 이상이 사막 지형이고 무덥다. 자연환경이 햇빛과 모래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옷이 필요했다. 게다가 유목민이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크고 작은 전쟁이 발발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여성성이 강조된 차림은 적들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가리는 히잡 같은 옷이 필요했을 것이다. 꾸란의 가르침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같은 관습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히잡이 이란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 여인들의 정체성과 신앙심의 상징이 된 것 같다. 때문에 하마스 여성들도 포탄이 떨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치 철모처럼 히잡을 고쳐 쓰고 갑옷을 입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오랜 역사를 머금은 머리카락 가리개가 역사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목적과 의미로 변모되어 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한 장의 천이 '머플러'가 되어 인체를 보호하고 자유롭게 멋과 개성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남녀 구분도 없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나날이 바뀌어가고 있다. 히잡에 대한 관심도 그렇다. 여성 탄압의 상징처럼, 그래서 히잡으로부터 이슬람 여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좀 더 폭 넓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녀들의 '희잡을 쓸 자유'와 '희잡을 벗을 자유' 모두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히잡이 세계적인 패션쇼에 자주 등장한다.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사실 히잡이나, 머플러나 별로 다르지 않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것은 히잡일 수도, 머플러일 수도 있을 따름이다.

역사를 바꾸는 힘을 지닌 히잡을 내 삶의 힘을 돋우는 소품으로 활용해볼만한 계절, 바람이 자주 불어대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