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89) 현대그룹 사훈이 '검소'인 까닭
회장이 온다고 이라크철도 부설 현장에 카펫 깔았던 임직원들에 호통 사치하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는 잘 안된다며 "카펫이 검소야" 꼬집어 회장실 녹슨철제 캐비닛을 보고 변중석 여사가 바꿨는데도 '노발대발'
정주영 회장의 검소함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구두 한 켤레를 20년 이상 신었다. 뒷굽만 갈고, 고무 창에 징을 박아서 신고 다녔다. 와이셔츠의 목 부분과 손목 부분이 닳으면 여비서를 남대문에 보내 수선을 해오라고 시켜서 다시 입었다고 한다.
회장실에 있던 철제 캐비닛도 20년이 넘게 써서 낡고 녹이 슬어 있었다. 변중석 여사가 너무 흉하니까 바꾸라고 해도 정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정 회장이 런던 출장으로 회사를 비웠을 때 변 여사가 합판에 얇은 무늬목을 덧댄 캐비닛으로 바꿔버렸다. 비서실 직원들은 변 여사를 말려야 했다.
"회장님 돌아오시면 난리 날 겁니다. 저희가 아무리 얘기해도 아직 20년은 더 쓸 수 있다고 절대 못 바꾸게 하셨거든요." "제가 와서 바꿔놓고 갔다고 하세요."
뻔히 어떤 결과가 나올 줄 아는 비서들은 철제 캐비닛을 버리지 않고 옆방 회의실로 옮겨놓았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정 회장은 당장 도로 바꿔놓으라고 노발대발했다. 변 여사가 바꿨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을 창업하고 나서 사훈을 '검소'로 지었다. 정 회장의 스타일대로 '불가능은 없다'라든지 '시간은 돈이 다'같은 원대한 꿈이나 현실적인 사훈이 어울릴 것 같은데 의외였다.
정 회장이 이라크 철도 부설 현장에 갔을 때 일이다.
회장이 온다니까 직원들이 현장 사무실에 부랴부랴 빨간 카펫을 깔아놓았다. 직원들은 잘한다고 한 일이었는데 정 회장의 호통이 쏟아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는 평생 집에도 카펫을 깐 적이 없어. 사치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있는 회사치고 잘 되는 회사 없다고. 그게 싫어서 사훈을 검소라고 한 거야. 카펫이 검소야?"
정 회장은 직원들을 '동지'라고 불렀다. 같은 목적으로 현장에서 함께 일하니 동지가 어울린다고 했다. 가출해서 밑바닥 근로자부터 일을 시작했던 정 회장은 현장 근로자들의 생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사훈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정 회장은 근로자 위에 군림하려는 임원이 있으면 가차 없이 인사 발령을 내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근로자는 100점인데, 관리자와 기술자들은 50점 이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주영은 평생 근로자의 모습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이 된 뒤에도 시간만 나면 작업화에 작업복, 작업모를 쓰고 현장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얼마나 발걸음이 빠른지 수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뛰어가다시피 해야 했다.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를 만들 때는 주말에 현장에 가서 기사, 근로자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도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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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