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하딩 대통령의 '국정농단'
미국 현대사서 가장 무능한 정권…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요직에 앉혀 재임 29개월간 20억달러의 국고 손실… 정치인의 팬덤은 도덕성과 무관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 미국은 지금도 대통령제의 모델이라고 평가받는다. 한데 미국사를 살펴보면, '와! 이러고도 대통령제가 유지되었나' 싶을 정도로 멍청하고, 부도덕한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다.
제29대 대통령 워런 G. 하딩(재임 1921. 3~1923. 8)은 미국사에서 최악의 대통령을 꼽을 때 빠지지 않은 인물이다. 대공황 이전 미국의 꿈과 황금의 시대를 다룬 『여름, 1927, 미국』(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에선 '먹구름'의 조짐이란 의미에서 하딩 이야기가 나온다.
오하이오주 작은 도시의 신문사 사주였던 그가 신참 상원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사실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 1920년 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당 간부들은 빈약한 후보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하딩을 선택했다. 지능, 성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중간 수준에도 못 미쳤지만 "대통령답게 생겼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덕분이었다.
하딩 행정부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었다. 하딩이 여러 고위 공직에 자질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임명한 탓이었다.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에 임명된 동향 친구 대니얼 R. 크리싱어는 한 굴착기 회사의 이사가 최고 경력이었던 인물이다. 백악관 수석 군사보좌관에는 하딩 가족에 신문을 배달해주던 오라 볼딩어란 인물이 선정되었다. 자기 누이에게는 미 보건국 고위 직책을 주었고, 그녀의 남편은 연방교도소 소장에 앉혔다.
하딩이 여행에서 사귄 찰스 포브스란 인물은 보훈국장이 되어 2년 동안 잘못된 예산 집행, 횡령 등으로 2억 달러의 국고를 축냈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은 뇌물을 받고 국유지 유전개발권을 몇몇 기업인에게 넘겨주었으니,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 미국 최대의 권력형 비리로 꼽히던 '티포트 돔' 스갠들이다.
이래저래 하딩 행정부는20억 달러의 국고 손실을 입힌 것으로 평가되는데, 하딩의 재임기간이 29개월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줘 보면 엄청난 부패와 무능을 저질렀던 셈이다. 다행히도(?) 하딩 대통령은 1923년 알래스카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직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연사'함으로써 생전에는 이 모든 추문의 후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딩 사후 서른한 살 연하의 정부 낸 브리턴이 『대통령의 딸』이란 책을 출간함으로써 그의 평판은 바닥을 쳤다. 하딩이 숨겨진 딸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든가, 백악관의 벽장에서 정사를 나눴다든가 하는 추잡한 내용 때문에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절하자 브리튼은 직접 출판사를 차려 책을 냈을 정도였다.
하딩과 관련해 가장 웃픈 사실은 그의 시신을 워싱턴으로 운구하는 장송열차를 보기 위해 대략 300만 명의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애정과 존경의 표시"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부패와 거리가 멀었지만 '완전한 바보'였던 하딩에 대한 미 대중의 사랑을 보면 정치인의 팬덤은 도덕성이나 능력과 무관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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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