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데이터경제학] ⑧ 애물단지 '빈집'의 활용법 없나

전국에 159.9만호 비어 있어 … 정부 5년간 주택공급 목표보다 많아 농어촌 빈집은 '지역 소멸' 지표이고, 도시 빈집은 '위축 사회'를 대변 철거만이 답은 아냐…리모델링 후 '계절근로자 기숙사' 이용 등 눈길

2025-09-23     양재찬 이코노텔링 논설고문

이재명 정부가 2030년까지 5년간 135만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9·7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전국에 이에 버금가는 빈집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1월 1일 기준 전국의 빈집은 159만9000호. 우리나라 전체 주택(1987만3000호)의 8.0%에 해당한다.

빈집도 아파트가 88만5000호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단독주택이 36만3000호, 다세대주택 24만5000호, 연립주택이 7만7000호다.

여기서 빈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미거주 주택을 일컫는다. 신축 주택 및 매매·임대·이사·미분양 등의 사유로 인한 일시적 빈집도 포함한다. 빈집은 2023년과 비교해 1년 사이 6만4000호(4.2%) 늘었다. 전체 주택 중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도 2023년(7.8%)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전국 평균이 열두 집 건너 하나 꼴이지 광역 지방자치단체, 기초단체별로 나눠 보면 훨씬 심각하다. 시도별 주택 중 빈집 비율이 높기로는 전남 15.0%(12만7000호), 제주 14.2%(3만7000호), 강원 12.5%(8만6000호), 경북 12.5%(14만1000호), 전북 12.4%(9만6000호), 충남 12.3%(11만6000호) 순서다. 특히 건축된 지 30년 이상 된, 오래된 빈집 비율이 높은 지역은 전남 8.8%(7만4000호), 경북 7.1%(8만호), 전북 6.6%(5만1000호)이 지목된다.

빈집이 늘어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심화함에 따른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위기, 인구 및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 지방도시의 난개발 및 원도심 공동화,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는 것 등이 가세했다.

농산어촌 지역에서 늘어나는 빈집은 '지역소멸'의 지표나 다름없다. 지은 지 30년 이상 의 오래 된 빈집 비율 1~3위가 전남, 경북, 전북이고 노후된 빈집 비율이 낮은 시도 1~3위가 세종(1.0%, 서울(1.3%) 경기도(1.4%)인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빈집 팬데믹'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처음 한두 집에서 시작해 빠르게 번져간다. 빈집이 생기면 이런저런 피해가 옆집으로 넘어온다. 쓰레기가 마당을 넘쳐 골목길을 막아서고, 인근 주민들의 위생과 안전을 위협한다. 사회적·경제적 투자가 멈추고, 동네 탈출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많은 원도심에서 더하고, 지역 공동화로 진행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은 일본은 빈집 사태도 먼저 경험했다. 과거 경제도, 인구도 성장일로였던 시절에는 없던 걱정거리다. 성장사회가 급속히 '위축(萎縮)사회'로 접어들며 나타나는 아이러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5월 1일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4개 부처가 참여해 마련한 종합계획은 국가가 빈집 관리체계를 마련하고, 시·군·구 등 지자체의 빈집 정비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소유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등 국가·지자체·민간이 협력해 빈집을 관리하기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한 '농어촌빈집정비특별법' '빈건축물정비특별법'도 제정·시행했다.

법을 만들고 국가가 빈집을 관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빈집은 여러 명이 공동 소유하거나 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 공동 소유자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정비나 철거에 대한 합의가 어려울 때가 있다. 철거나 정비를 위한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2022년 6월에도 범정부 차원에서 빈집 관리와 정비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적은 미미했다.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빈집 우수 활용 사례도 계속 발굴해 널리 알려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2번째인 '행복농촌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빈집이나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해 공동체 공간, 청년 창업공간, 마을 카페 등으로 재탄생시킨 '빈집 재생' 분야를 신설했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 '계절근로자 기숙사'는 오래된 빈집을 리모델링해 지상 3층, 객실 19실 규모로 공동주방·세탁실 등을 마련해 농촌 일손 부족 해소와 근로자 정착 여건 개선에 기여함으로써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빈집은 마을 공동주차장·정원은 물론 공유창고·무인택배보관소·돌봄시설·태양광발전·스마트팜·마을호텔 등 관광시설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빈집애(愛)' 통합 플랫폼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빈집은 자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긴요하다.

빈집은 슬럼화 및 지역 침체의 단초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빈집 증가 원인이 복합적인만큼 그 해결책도 흉물화한 빈집을 철거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사실 철거하는 데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 리모델링해 활용하면 빈집 문제 해결을 넘어서 지역경제 활성화, 사회 통합, 문화 재생도 꾀할 수 있다.

도시든, 농산어촌이든 빈집은 철거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활용 가치를 높여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때다. 지역별 빈집 증가 요인과 특성에 대한 맞춤형 빈집 관리 및 활용 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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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이코노텔링 논설고문■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 중앙일보 산업부장·경제부장, 아시아경제 논설실장 역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저서: <통계를 알면 2000년이 잡힌다>,<내가 세계 최고, 숫자로 보는 세계 여러나라>공저-<그래도 우리는 일본식으로 간다>,<What's Wrong, Korea?>,<대한민국 신산업지도>,<코리안 미러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