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머스크는 '학생 비자'로 '아메리칸드림' 실현

어머니 덕에 캐나다 여권 발급 받아 캐나다 대학 입학 후 미국 대학 편입 미국의 이민제한정책 비판 앞장…미국인은 원주민 후손 외엔 다 이민자 현대자동차 조지아 공장서 근무하던 근로자 300여 명 체포는 '어불성설'

2025-09-15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나는 '불법' 이민자였으므로, 만약 트럼프 씨와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그 뜻을 관철시켰다면, 나는 이미 미국에서 내쫓겼을 것이고, 따라서 집투, 페이팔, 테슬라 모터스, 스페이스엑스, 솔라시티를 설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세계를 바꾸지도 못했을 것이고, 수천 명의 미국인을 고용하여 여러분의 경제를 성장시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짐작하듯이 이건 그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고백'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무렵 소셜 미디어에 널리 유포되었다는데, 실은 가짜 뉴스다. 머스크는 불법 이민자였던 적도 없고 이런 글을 쓴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우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이다. 10대까지 그곳에서 자랐는데 "예전부터 뭔가 끝내주는 기술이나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십중팔구 미국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목표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가는 것"이었단다. 결국 머스크는 17살에 2,000달러만 들고 '북미 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의 모친 메이는 거의 평생을 남아공에서 살았지만 캐나다 태생이었기에 캐나다 여권을 신청할 수 있었고, 머스크는 덕분에 어머니를 통해 캐나다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렇게 해서 머스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의 퀸스대학에 입학했고, 이후 학생 비자로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 스쿨로 편입했다. 대학을 마친 후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해 에너지 물리학과 재료과학으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는데 첫 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기자동차에 응용할 수 있는 초대용량 에너지 저장 장치를 개발하는 집투(Zip2)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그는 학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비자로 미국에 머물 수 있었다. 이후 20년 동안 6개의 회사를 세우며 세계 최고의 부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 배경이 있는 만큼 머스크가 미국의 이민 제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했다.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가 무슬림이 대다수인 7개국으로부터의 이민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시행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페이스엑스에 로켓 설계 등을 위한 여러 유능한 외국인 공학자·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 이유를 들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을 제외하면 미국인 모두가 남의 나라 사람들 후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기여한 킹 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머스크도 이민자 출신이다. 그런 머스크가 이번에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가 귀국하게 된 사태에 대해서는 뭐라 했을지 궁금하다.

울화통이 터진 끝에 펼쳐 든,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를 다룬 『여행 면허』(패트릭 빅스비 지음, 작가정신)에 실린 내용이다.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