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빙수, 1897년 국내 등장

독립신문, 수표다리 근처에 빙수를 파는 집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 실어 천연 얼음의 위생 상태, 별로였던지 배탈 예방약 섞어 만든다는 광고도

2025-06-30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빙수(氷水) 잡수시거든 인단(仁丹) 반다시 잡술 것"

이것, 1927년 7월 30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인단 광고의 카피다. 여기서 말하는 인단은, 옛날 어르신들이 두통, 과음, 소화불량 등을 겪을 때 속을 다스리기 위해 드시던 '은단'을 가리킨다.

요즘에야 은단 자체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지만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빙수'다. 왜 있잖은가. 가루처럼 곱게 간 얼음에 단팥, 망고 등 각종 '고명'을 얹어 먹는 여름 디저트.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박현수 지음, 한겨레출판)란 책이 있다.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란 부제로, 커피에서 빙수까지의 유래, 풍경, 일화 등을 소개한 흥미진진한 책이다.

이에 따르면 빙수는 1897년 《독립신문》 기사에 처음 등장한단다. 수표다리 근처에 빙수를 파는 집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1903년 5월부터 《제국신문》에 '국영당'이란 빙수점 광고가 잇달아 실린다. 이때 빙수는 얼음을 깨끗한 헝겊으로 싼 뒤 송곳 등을 이용해 잘게 부순 뒤 거기에 '이치고(딸기시럽)'를 뿌려 먹는 별식이었다.

이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는데, 영국 공사 밑에서 일하던 나카가와 가헤에란이 1869년 요코하마에 빙수점을 연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나카가와의 빙수는 물에 천연 얼음을 넣은, 말 그대로 얼음물(빙수)이었는데 그래도 2시간 정도 줄을 서야 먹을 만큼 인기 만점이었다고 한다. 한데 천연 얼음의 위생 상태가 별로였던지 빙수를 먹고는 배탈이 자주 나는 바람에 국영당 광고는 아예 배탈 예방약을 넣은 빙수를 판매한다고 자랑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빙수점은 처음엔 일본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 황금정(을지로) 등에 들어섰다. 그러다가 조선인들도 찾게 되면서 종로에도 빙수점이 진출했는데, 1915년에 이르면 경성에만 400개가 넘는 빙수점이 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얼음 빙(氷)' 자 쓰인 깃발을 내걸고, 입구에는 구슬로 만들어진 주렴을 드리운 것이 당시 빙수점 풍경. 특이한 것은 빙수가 한 철 장사인 때문이었는지 빙수점에서 맥주를 같이 팔았다. 빙수를 너무 좋아해 '빙수당 당수'라고도 불린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빙수'란 글에서 빙수점에 가서 '지단가오'나 '밥풀과자'를 먹는 사람은 빙수의 맛을 모른다고 한 데서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지단가오'는 중국식 계란빵, '밥풀과자'는 쌀을 튀겨 만든 강정을 가리킨다.

어쨌거나 송곳, 망치에 이어 대패로 얼음가루를 내던 빙수점은 1920대 이후 얼음을 깎는 빙삭기가 개발, 도입되면서 얼마나 고운 얼음가루로 빙수를 만드는지가 가게의 명성을 좌우하게 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당시 언론에서 꼽은 일등 빙수 맛집은 종로 광통교 옆에 있던 '환대상점'이었다.

하지만 혀에 얹어만 놓아도 사르르 녹았다는 환대상점의 빙수도 1930년대 이후 아이스크림에 밀려난다. 1869년 일본에 선보인 아이스크림은, 초기엔 요즘 시세로 7만~8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 황실과 고위 관료 등만 즐길 수 있었으나 1920년대 후반 조선에서도 판매될 무렵에는 대량생산으로 저렴해져 "여름의 여왕"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여름에 빙수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자니 역시 역사는 '줄기'보다 여백이 훨씬 흥미로움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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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