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등 터진 '조선의 수사관'
직위는 낮지만 정치권 싸움에 끼여 애꿎게 곤욕을 치른 경우 허다 분수에 넘치는 가마를 탄'장희빈의 모친' 단속 했는데 숙종이 대노 때려죽이라 명하자 전례 들어 항변 했지만 '왕권 도전 죄' 못 면해 요즘 권력층의'비리'를 수사했던 검찰의 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이론상 그렇다. 조선 시대는 달랐다. 당시를 다룬 TV 드라마나 사극 영화는 임금과 '대감', 그들이 사랑을 다투는 여인들을 빼고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으리'들만으로는 나라가 굴러가지 않으니 당연했다. 그렇게 국가 운영을 담당했던 실무자들 중 '소유(所由)'라는 낯선 명칭을 접했다.
조선 관료제의 손과 발 구실을 했던 하급 관원들의 이야기를 캐낸 『조선의 9급 관원들』(김인호 지음, 너머북스)에서다.
'소유'는 사헌부의 조례(皁隷)인데, '조례'란 관아에서 부리던 하인을 뜻하니 붓을 잡고 일하는 다른 아전과 달리 몸으로 때우는 업무를 했다. 하지만 사헌부 자체가 형조·의금부와 더불어 중대 범죄자를 다루는 권부(權府)이다 보니 이들도 사헌부를 등에 업고 쥐꼬리만한 권력일지언정 제법 힘을 썼던 모양이다. 개국 초에는 정원이 50명이었으나 세종 대에 이르러 90명에 이를 정도로 성세(盛世)를 누리기도 했고.
책은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낸 이야기인 만큼 주로 이들이 친 '사고'가 중심이다. 19대 왕 숙종 25년(1699) 때 일이다. 과거 시험장에 사헌부 복장을 한 이가 등장했다. 시험 부정을 단속하러 왔나 했는데 행동거지가 수상했다. 시험을 관리하던 나장(병조 소속의 하급 서리)이 붙잡으려 하자 작은 쪽지를 떨어뜨리고 도망쳐 버렸다.
쪽지를 보니 그날 시험과제인 책문(策文)이 적혀 있었다. 이를 시험 답지와 비교해보니 문제 유출을 받은 사람은 사헌부 감찰 이천정, 쪽지를 전하려 했던 이는 사헌부 소유 양도생이었다. 아마도 이천정은 음서(蔭敍)로 등용되었기에 정식 과거 급제가 필요했던 모양인데, 이를 양도생이 도우려다 들키는 바람에 이천정은 3년의 노역형에 처해졌다.
이건 소유가 저지른 불법행위이지만, 정치권 싸움에 끼여 애꿎게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다. 역시 숙종 때 일이다. 숙종 14년(1688) 사헌부 지평(정5품) 이익수가 장소의(후일 장희빈)의 모친이 뚜껑이 있는 가마를 타고 대궐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왕자를 낳은 장소의를 돌봐주려는 목적이었지만, 3품 이상 관리의 부인들이나 탈 수 있는 뚜껑 있는 가마를 천한 신분인 장소의 어머니가 탔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익수는 국법에 따라 장씨 어머니의 가마를 부수라 명령했고 사헌부 소유들은 가마를 부숴 불태웠다.
자, 숙종으로서는 자신의 소생을 낳은 장소의를 위해 그 어머니의 궁궐 출입을 허용했던 만큼 분노할 수밖에. 숙종은 가마를 부순 아전과 소유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이라고 명했다. 이익수는 선조 때 국왕의 유모가 뚜껑 있는 가마를 타고 대궐에 들어오자 이를 꾸짖고 걸어나가라고 한 전례까지 들어 항변했지만 숙종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 여겨 굽히지 않았다.
소유들 입장에선 가히 시키는 대로 하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니 무척 억울하지 않았을까. 요즘 권력층의 '비리'를 덮었거나 수사했던 검찰의 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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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