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세상만사] ⑫ 봄버들의 위용

꽃의 화려함에 더해 버들의 푸르름으로 봄은 완성된다 다산뿐 아니라 문인,화가들 사이 버드나무는 인기 최고

2025-04-17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시나브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봄은 분명 꽃의 계절이지만 꽃만의 독차지는 아니다. 일찌감치 송나라 문호 소동파(蘇東坡)가 갈파했듯이 '유록화홍(柳綠花紅)'이 진면목(眞面目)이다.

꽃의 화려함에 더해 버들의 푸르름으로 봄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제 아무리 꽃들이 아름답기로 칙칙한 겨울 냄새의 무채색보단 옅은 푸르름이 깔려 있어야 낫지 않겠나. '산은 산, 물은 물'처럼 얼핏 존재론의 분위기를 풍기는 '당연한 말씀'이지만 퍼뜩 한 소식 깨달음을 준다. 거짓으로 꾸밈없는 자연. 그리고 욕심으로 탐냄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너.

그런데 동파의 말씀을 곱씹다 보면 외레 꽃의 화려함보다 버들의 푸르름에 더 박수를 치는 듯싶다. '유록'을 '화홍'에 앞세운 저의(?)도 그렇고, 유록 하나로 오만가지 꽃을 화홍이란 한 묶음으로 해서 맞 비유하는 품이 마냥 그러하다.

'담 안에 붉은 꽃은 버들 빛을 새워마라/ 버들 곳 아니런들 화홍(花紅) 너 뿐이어니와/ 네 곁에 다정(多情)타 있을 것은 유록(柳綠)인가 하노라.'

붉은 꽃은 같은 꽃이 아니라고 해서 푸르른 버들을 시샘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정한 짝으로 여기라! 동파에 100% 동조하는 조선의 가객 안민영(安玟英·1816~?)의 영탄이다.

'수 만 갈래 늘어진 능수버들(楊柳千萬絲)/ 가지마다 푸르고 싱그럽구나(絲絲得靑春)/ 휘늘어진 실가지 봄비에 젖어(絲絲霑好雨)/사람의 마음을 흔드네(絲絲惱殺人)' - 정약용, <수류(隨柳)>

점잖은 선비 다산(茶山) 선생도 봄비에 젖어 여인의 삼단 같은 머리처럼 살랑거리는 능수버들 앞에선 어쩔 수 없나보다. "아주 그냥 죽여 줘요~!"를 외쳐댄다.

(* 이 시를 한자 발음대로 읽어보라. 늘어진 능수버들가지를 형용하는 '絲'가 모습뿐만 아니라 소리의 묘까지 얻고 있음이라. 봄바람에 춤을 추며 살랑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다산뿐만 아니라 많은 문인과 화가들 사이에 버드나무의 인기는 최고였다. 실제로 어느 조경 학자가 우리나라 한시에 나오는 초목의 빈도를 조사해보니 1위를 차지한 건 소나무나 국화가 아니고, 바로 버드나무였다고 한다. 또 대중가요ㆍ가곡ㆍ판소리 등 음악예술의 가사에도 버드나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한말부터 1970년대까지의 대중가요 가사에 인기 1위였다.

#버드나무 무리는 세계적으로 300여 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모두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에 속하는 활엽수이며, 갯버들 같은 관목도 있고, 왕버들 같은 교목도 있다. 주로 북반구의 온대에서 한대에 걸쳐 자라는데 우리나라에만 40여 종이 있다. 이름도 그냥 '버드나무'로 불리는 종이 있고, 흔히 아는 능수버들 수양버들 왕버들 말고도 그 밖에 콩버들 난장이버들 떡버들 쌍살버들 닥장버들 반짝버들 쪽버들 여우버들 호랑버들 등 정감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백두산 꼭대기에 사는 콩버들은 키가 한 뼘도 안 되는 반면에 수양버들이나 왕버들의 경우 10여 m를 훌쩍 자란다. 나이도 고작 몇 년밖에 못 사는 종이 있는 가하면 경북 청송의 주산지(注山池) 물속에 사는 왕버들은 무려 350살도 넘는 노거수(老巨樹)이다. 버드나무가 남반구에도 몇 가지 살고 있지만 호주대륙에는 없다고 하는데 이 좁아터진 땅에 이리 다양한 종류가 터 잡고 있는 걸 보면 가히 대한민국이야말로 '버들나라'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니 어느 곳에서건 버드나무를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갖가지 민속과 문화가 생겨나 정겨움을 더했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해 수향목(水鄕木)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이지만 웬만한 곳에선 잘 자라는 강인한 친구다. 이 때문에 예전엔 여느 마을이고 번듯한 버드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삼거리 주막 마당 곁에 그럴싸하게 늘어진 능수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행길 따라 서너 그루씩 나래비로 서 있는 가하면 동네 나들목엔 왕버들이 떡하니 당산나무로 자리하고, 우물가와 빨래터는 물론 개울 방죽이나 웅덩이 가엔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한여름 농사일을 하다 땡볕을 피해 새참을 먹던 곳도 버드나무 그늘이었고, 물레방앗간 옆 품이 넉넉한 버드나무가 동네 처녀총각이 남몰래 속닥이던 밀회 터였다. 이렇게 버드나무가 천지벌판이니 어릴 적 오며가며 심심하면 한 가지 뚝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불고, 멱 감다 맨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꿰미하는 것도, 노을 지는 논둑길을 따라 꼴 먹인 누렁소를 몰이하며 집으로 갈 때 요긴한 회초리도 버들 가지였다. 고향하면 버들이요, 버드나무는 곧 고향인 까닭이다.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 때가 옛날~'

가수 고복수가 일제 때(1934년) 부른 <타향살이>의 한 대목으로 '고향=버드나무' 정서를 이 보다 더 고스란히 드러낼 수는 없다. 최근까지도 리메이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사랑받는 비결이다.

당나라 초 문신 송지문(宋之問)도 생각이 같았던지 〈길에서 만난 한식(途中寒食)〉에서 이렇게 읊었다.

'고향 생각으로 애끊는 그 곳은(故園腸斷處)/ 밤낮으로 버들가지 새로워지겠지(日夜柳條新)'

#많은 가지의 버드나무 가운데서도 우리네한테 가장 영감을 주고 인기가 높은 건 뭐니 뭐니 해도 능수버들과 수양버들. 가늘디가늘면서도 기다란 가지에 이제 막 시작하는 연록(軟綠)을 올리고 살짝 부는 실바람에도 천 갈래 만 갈래 살랑대는 그 자태(姿態)에 누군들 혹하지 않으리오. 거기에다 때론 보슬비에 촉촉이 젖어 황혼녘에 이내라도 낄 양이면 선경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방불하리니-.그래서인가, 미인의 눈썹을 버들잎에 비유해 유미(柳眉)라 하고, 허리가 가늘고 예쁜 미인은 유요(柳腰)라고 한다.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와 백거이(白居易)가 애지중지한 첩의 이름이 모두 유지(柳枝)인 것은 또 어떤가.

민요 <천안삼거리>에 나오는 능수버들은 토종으로 중국 강남이 고향인 수양버들과 마찬가지로 하늘거리는 아취(雅趣)가 일품이다. 어느 풍경과도 어울려 격조를 높인다. 그 멋스러움 덕에 예로부터 관공서나 별서(別墅), 공원 등에 풍치수로 각광을 받았고, 가로수로도 그만이었다. 봄을 상징하는 절묘한 어구(語句)중 하나로 꼽히는 왕유(王由)의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유색신: 객사의 버드나무는 물이 올라 한층 푸르르고)'도 그래서 나왔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화 가운데서도 압권은 '절양류(折楊柳)'. 정인(情人)과 헤어질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건네주던 풍속으로 그냥 절류(折柳)라고도 한다. 하도 애틋한 풍속이라 수많은 시가에 나오는데 이런 주제의 시와 악부를 뜻하는 장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난 창밧긔 심거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님곳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소서 (묏버들 골라꺾어 보내노라 님에게/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잘 알려진 대로 조선 선조 때 기생 홍랑(洪娘)의 시조로 절류 풍속의 고갱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절류 풍속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한대(漢代)부터였다. 특히 장안(長安)의 동쪽에 파수(灞水)란 강이 흐르고, 이곳에 놓인 다리가 파교(灞橋)인데 바로 석별의 명소였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를 꺾어 떠나가는 님에게 건네는 장면. 버드나무를 뜻하는 '柳'자와 머물다는 뜻의 '留'자의 발음이 같은 데 착안해 '제발 가지 말고 머물러 달라'는 표시로 버들가지를 전하는 속울음이 짠하다. 그런다고 이미 작정한 마음이 돌려질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데서도 잘 자라는 버드나무처럼 부디 가는 길 내내 무탈하고 뿌리를 내리고 잘 살라는 '비나리'의 억지일 테다.

#이별이 뭐 대수라고 그 야단을 떠느냐고? 요즘이야 형편이 되기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저 편까지 날아가 철마저 반대로 살다가, 그것도 싫증나면 며칠 만에 되짚어 돌아와 언제 그랬냐 싶게 사는 세상이다. 이러니 떠나고, 헤어지는 게 일상이고, 그러다 보면 떨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에 무덤덤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휴대폰 하나면 에베레스트 꼭대기나 남극에서도 영상을 주고받으며 실시간으로 얼굴이며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음에랴.

하지만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절만 해도 비행기 한 번 타는 게 특권일 만큼 하늘의 별 따기였고, 또 거기서 10여년만 거슬러도 신혼여행이랍시고 택시를 대절해 북악스카이웨이와 삼일고가도로, 남산을 '드라이브'하는 게 '땡'이였다.

하물며 세도 있는 양반이나 이용 가능했던 말과 나귀가 전부이던 그 옛날 집을 떠나는 먼 길 나들이는 어땠을까. 있는 집 자식이야 과거보러 경마잡이를 딸려 문경새재도 쉬이 넘나들었지만 도붓짐을 메고 전국을 싸돌아다녀 하는 장돌뱅이하며, 북관에 수자리를 서려 징발돼 가는 남정네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에 늘 불안을 이고 사는 팔자였다. 돌아올 기약을 한다지만 철석같이 믿기엔 어느 구석인가 늘 찜찜한 출발을 마주해야 하는 아낙의 심사. 안팎으로 삶 자체가 부평초 같은 인생들에게는 만나고 헤어지는 게 늘 이승 저승을 넘나드는 고통이고 애끊는 슬픔이었으리라. 허니, 맘은 맘이고, 뭔가 쥐여 주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하고. 네 맘 내 맘이 곧 이심전심이라 눈에 바로 드는 가차운 그곳에 하필 버들이 있을 게 뭐냐. 그 낭창낭창한 버들실로 동심(同心)이나 결어볼까, 아니면 아예 떠나가지 못 하게끔 동여매어 버릴까나.

#옛날엔 먼 길을 나서면 강을 건너거나 큰 고개를 넘게 마련이다. 하여, 나루터가 있는 포구나 영마루 아래 마을에는 주막이나 역참이 있어 나그네들은 이곳에서 요기를 하거나 하룻밤을 묵어 기운을 차린 뒤 다시 여정을 이어 간다. 이곳으로 연인이나 친지를 불러 상봉을 하고, 또 헤어지니 '눈물의 광장'이 따로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작부와 하룻밤일망정 풋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새로운 길동무를 만나 소식을 주고받고 정담을 나누며 회포(懷抱)를 푼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니 새로 이별도 생긴다. 주막이나 역참에는 근처에 물이 흔해 누가 부러 심지 않아도 조이 자란 능수버들 한두 그루는 있는 법인데 풍치를 보려보다는 말을 위해 고삐를 매는 기둥이자 그늘을 마련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장치도 한겨울엔 별 볼일 없다. 머리를 풀 일이 아니고서야 매몰차게 몰아치는 북풍한설을 뚫고 길을 나서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니 주막이건 역참이건 인적 없이 썰렁할 수밖에. 그러니 제 아무리 자태가 고운 능수버들이라 해도 때깔조차 거무튀튀한 게 늘어진 가지가 되레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준다. 그러다 이윽고 훈풍이 불고 언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인인가가(人人家家) 엄동에 어쩔 수없이 접어뒀던 원행(遠行)을 재개하고, 그 무렵 보슬비라도 한두 차례 지나고 나면 어느덧 황금빛 실가지로 물이 올라 부드러운 몸매로 하늘거리는 능수버들의 무도회에 초대된다. 그리고 능수버들은 이별의 당사자들보다도 더 아픈 '꺾이는 고통'의 행진을 시작한다. 소매를 나누는 순간, 간신히 참아 오던 슬픔은 마침내 오열(嗚咽)로 터지고, 주체할 수없이 쏟아낸 눈물 끝에 건네는 한 줄기 버들가지-.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

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