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39)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패션도 긴장'
'중국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제품에 떨어지는 폭탄은 한국 패션 브랜드에도 꽂혀 패션의 '디지털 전환'은 생존을 위한 선택… 위기 버티면 K패션은 세계시장서 생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등장하자마자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세율이 더 높고, 압박도 더 노골적이다. K-패션도 그 한복판에 서서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단순한 선거 구호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 공급망을 흔드는 실질적인 무기다. 특히 '중국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제품은 곧바로 관세 폭탄의 타깃이 된다. 문제는 이 폭탄이 한국 패션 브랜드에도 꽂힌다는 점이다.
우리는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옷을 제작하고 있다. 중국산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만든 옷도 트럼프의 높은 관세 리스트에 올라 있다. 겉으로는 '메이드 인 코리아'지만 실제 제조국이 중국이나 이들 동남아 국가들이라면 미국 시장에서 고율의 관세를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고, 마진도 깎인다. 제품 가격이 올라가거나 제품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도 타격이 크지만, 신진 디자이너나 중소 브랜드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해법은 '생산지 다변화'다. 말은 쉽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생산지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히 제조 공장만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설비 투자, 인력 교육, 품질관리까지 전반적인 생산과정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자금과 노하우가 부족한 브랜드에게는 버거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다변화"를 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브랜드의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가격에 덜 민감한 충성 고객층을 확보해야 한다. 콘텐츠, 디자인,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브랜드는 어느 정도 가격 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 MZ세대가 브랜드 뒤에 숨은 '철학'에 주목하는 이유다. 제품 하나에 담긴 의미와 가치가 소비를 이끄는 시대이니 그렇다.
FTA(자유무역협정)도 관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다. 그러나 조건이 까다롭고 복잡하여 실제 활용은 쉽지 않다. 원산지 요건 충족과 복잡한 인증 절차 등으로 인해 '종이 위의 혜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을 치루는 현재 우리나라 여건상 단기간 내 뾰족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브랜드가 중간 유통 없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D2C(Direct to Consumer) 모델은 작지만 강한 브랜드에게 유리한 구조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사회적 관계망), 디지털 플랫폼, 전자상거래를 매개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대다. 특히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디지털 전환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디지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트럼프의 고강도 관세정책이 아니어도 어차피 패션도 '무역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이번 정책이 일시적인 악재일 수도 있지만, 이 위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 국가에 의존하는 공급망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진짜 패션 강국은 단지 옷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어떤 세계 질서 속에서도 자립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갖춘 나라다.
트럼프를 탓하는 데 그치지 말자. 우리는 품질 좋은 옷을 만드는 법뿐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버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것이 K-패션이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