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75) "계약을 이따위로 하냐"
유조선 가격 오르자 '계약의 기본' 따져 물어 … 사장 등 임원들에겐 날벼락 한국 정부의 수출 승인 나지 않은 것이니 '유조선 수출 계약 무효' 라고 주장 문제가 터졌을 때 근본적인 것 체크하는 자세 보고 "역시 정주영" 이구동성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정 회장이 소리 질렀다. "계약을 어떻게 이따위로 한 거야?"
유럽에서 한밤중에 자다가 전화를 받은 사장은 '마른하늘에 날 벼락'이었다. 정 회장은 전화에 대고 사장을 한참 깨더니 소매를 툴툴 털고 휘적휘적 걸어서 나갔다.
과연 정 회장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정 회장 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차근차근 처음부터 따져봤다. 계약 자체는 영국 법에 따르는 계약이니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출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정 회장은 왜 '어느 나라에서 수출하는 거냐'라고 물어 봤을까. 그렇다면 계약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풀 수 있는 열쇠가 있을까?
드디어 찾았다. 한국에서 물건을 수출하려면 한국 정부의 수출 승인을 먼저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 유조선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의 수출 승인이 나지 않았다. 계약은 한국 정부의 승인이 난 후 부터 효력이 생긴다. 정 회장은 바로 이걸 지적한 것이었다.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계약 직후에 유조선 가격이 올랐을까, 왜 계약을 일찍 했을까만 생각하고 모두가 속앓이만 하고 있을 때 정주영은 근본적인 것을 체크하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문제 해결에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또 증명한 사례였다.
아직 정부의 승인이 나지 않아서 계약의 효력이 없다는데 발주 업체가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제값으로 올린 가격으로 다시 계약했다.
현대중공업 임원들은 입을 모아 "역시 정주영"이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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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