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73) "중국 애라고 날리지 말라는 법 있어?"

LA 올림픽 양궁서 '김진호의 실수'보고 받은 정회장의 예언 같은 반응 실제로 중국선수 0점 쏘아 2등으로 밀리고 서향순이 어부지리 금메달

2025-03-18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정 회장은 편안한 표정으로 양궁 소식을 물었다. '당연히 김진호가 금메달이겠지'라는 표정이었다. 배 국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좌불안석이었다. 정 회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우물쭈물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김진호가 0점짜리를 하나 쏘는 바람에 3등으로 밀렸다고 합니다."

순간 정 회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누가 1등이야?"

"중국 선수가 1등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가장 확실한 금메달이 날아갈 판이었다. 정 회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잠시 침묵했다.

배 국장은 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은 가운데로 모으고 언제 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한 상태로 기다렸다.

정주영(왼쪽)

이때 정 회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기가 막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말이야. 중국 애라고 날리지 말라는 법 있어? 너무 풀 죽어 있지 말고 끝까지 지켜보라고."

배 국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중국 선수도 0점을 쏠 수 있다고? 양궁 대회에서 두 선수가 동시에 0점을 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선수도 실수하길 바라느니 차라리 서향순이 분발해서 역전하는 게 훨씬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

그런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리링잔이 마지막 발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 마치 마법사가 주문을 건 것 같았다. 1등을 달리던 선수가 두 명이나 0점을 쏘는 바람에 순위가 밀린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마지막 발에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배 국장은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정 회장이 예언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일을 예견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중국 애라고 날리지 말라는 법 있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까. 위기의 순간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처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까.

결국 리링잔은 2위로 밀렸고, 김진호가 3위였다. 실수 없이 꾸준하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서향순이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부지리漁父之利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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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