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44) '기회비용' 날려 굶은 '늙은 사자'
힘이 예전만 못한 자신의 능력 과신해 산토끼 아닌 사슴을 잡아 먹으려다 사냥 실패 안전하면서 수익성 좋은 투자 상품은 이 세상에 없어 … ' 장기 분할 투자 '가 바람직
먹잇감을 찾아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먹이를 잡지 못해 허탕만 쳤습니다. 지친 사자는 그늘에서 쉬기 위해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그 나무 밑에서 잠자는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뜻밖의 행운을 만난 사자는 기분이 좋아 어쩔줄 몰랐습니다.
사자는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살금살금 기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주 가까운 곳에서 풀을 뜯어 먹는 사슴을 발견했습니다. 사슴은 사나운 사자가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사자는 어느쪽을 선택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였습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토끼는 이미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토끼보다 훨씬 맛있고 덩치 큰 먹잇감인 사슴을 놓치기도 아까웠습니다.
결국 사자는 잠자는 토끼를 놓아두고 사슴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자의 움직이는 소리와 사슴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토끼는 깜짝 놀라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늙은 사자는 사슴을 쫓아갔지만 워낙 발이 빠른 사슴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슴을 단념하고 돌아선 사자는 토끼라도 잡아먹기 위해 다시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으나 토끼는 이미 사라진 뒤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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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비용은 선택의 대가=세상살이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을 위해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사자처럼 산토끼와 사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만 할 때 어떤 것이 이득이 되는지 따져보고 골라야 합니다. 사자는 이미 늙어 힘이 예전만 못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론 사슴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깊게 생각해보고 행동했더라면 최소한 잠자는 토끼 정도는 쉽게 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택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기회비용입니다. 기회비용은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것의 가치라는 뜻이지요.
사자에게 사슴의 기회비용은 산토끼입니다. 산토끼와 사슴 가운데 먹잇감으로선 당연히 사슴이 앞섭니다. 그래서 사자는 사슴을 쫓아갔지만 잡아 놓은 산토끼를 잃어버렸을 경우의 기회비용은 전혀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사자는 사슴을 놓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회비용까지 부담해 이중의 손해를 본 셈입니다.
기회비용은 의사결정이나 어떤 선택을 하는 동기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경제원리입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얻은 이익이 기회비용보다 크다면 잘한 행동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행위를 할 때에는 일반적인 비용과 더불어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잃게 되는 기회비용도 꼭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어느 기업가가 50억원을 가지고 연 4% 이자를 주는 은행예금을 할까, 공장을 지을까 고민하다가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공장은 옷을 생산해 매년 150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럼 공장을 지은 게 잘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50억원을 은행에 넣었다면 매년 2000만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때 공장을 지은 50억원에 대한 기회비용은 예금이자 2000만원입니다. 결국 이 기업가는 매년 1500만원을 번 게 아니라 오히려 500만원을 손해본 셈입니다.
우리의 경제생활에서도 잘못된 선택으로 기회비용이 생기는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회사가 불황기에 내놓는 원금보장 상품입니다. 원금보장 상품은 대개 은행예금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성보다는 안전성을 추구하는 금융상품을 말합니다. 원금보장.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집니다. 언제 돌발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투자에서 원금보장은 매력적입니다. 시장이 불안할 때라든가 바닥을 헤맬 때 원금보장 상품은 '인기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까먹어선 안 되는 돈입니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지요. 이와 달리 목돈 형성 등 증식이 목적인 일반 자금은 그와 달리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굴려야 합니다. 자금 운용에서 안전제일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 원금보장은 든든한 약속으로 들립니다. 위험이 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운 투자상품이 또 있을까요?그러나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엄청난 기회비용을 물고나서야 원금보장이 소탐대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원금보장형 금융상품의 허실=원금보장형 마케팅이 먹혀드는 건 투자자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은 주가의 바닥 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됩니다. 그래서 원금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많이 팔립니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이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원금을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돈 버는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원금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증시가 좋을 때 원금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가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를 상대로 원금보장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원금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엔 공짜가 없습니다. 안전성(원금보장)을 원하면 수익성을 포기해야 하고 수익성이 높으면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안전하면서 수익이 좋은 투자상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익성과 안전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 방법은 있습니다. 수익이 좋은 상품에 매달 얼마씩 장기투자하는 것입니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시간의 힘을 빌려 누그러뜨려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같은 연금상품의 만기가 10년 이상 초장기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전문가들은 연금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최소 5~6% 수준이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후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이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의 권장 소득대체율은 70%이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원금보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입니다. 퇴직연금의 경우 적립금의 80%가 원금보장형에 투자되고 있다고 합니다. 원금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생활비가 모자라 '은퇴 쇼크'를 겪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결국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적배당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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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