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38) '옷차림 외교'의 한계
1887년 12월에 미국행 배에 오른 주미 박정양 초대공사 일행의 관복 눈길 끌어 대통령을 접견하러 갔을 때 박 공사는 왕(王) 같은 복장한 사람 없어 당황하기도 공식 행사서 美 외교관 부인들이 예의에 맞는 옷 입었음에도 '노출 패션'에 놀라 트럼프 만날때 정장 안입은 젤렌스키에 입방아…"외교의 힘은 옷차림보다 국력"
조선의 미국 초대 공사 박정양 일행이 영국 국적의 태평양 횡단 여객선 오셔닉(Oceanic)호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 부두를 떠난 것은 1887년 12월 10일이었다.
당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국정 간섭이 매우 심했다. 청은 '속국의 공사 파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 전권공사 파견을 반대했다. 결국 조선 정부는 미국 활동을 청에 보고하고 청의 관리가 외교활동에 동행한다는 청의 조건을 수용하고서야 전권공사를 파견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미 외교의 첫 발을 내딛은 여정이었다.
오셔닉호의 승객 대부분은 태평양을 오가며 차(茶)를 사고파는 상인들이었다. 일등실 승객에는 동·서양인이 두루 있었지만, 단 다섯 사나이를 제외하면 모두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문제의 다섯 사나이는 높고 까만 비단 모자(紗帽)를 쓰고, 알록달록한 가슴장식(흉배)이 달린 검은 비단옷(黑團領)을 입고, 가죽신(靴子)을 신고 있었다.
차림새는 그들과 약간 달랐지만 다섯 사나이와 동행임이 분명한 승객이 2등석에 2명, 3등석에 3명 더 있었다. 이 기이한 복장의 사나이들과 동행한 미국 의사 알렌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일등실 승객들에게 그들이 미국에 부임하는 초대 조선 공사 일행이라고 입이 닳도록 소개했다고 한다.
미국에 도착한 뒤에도 이들의 차림새는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느 날 공사 일행이 소매가 넓고 치렁치렁한 겉옷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흉배를 달고, 사모를 쓴 채 각대(계급에 따라 금, 은, 뿔 등이 장식된 허리에 두르는 벨트)를 하고 워싱턴 시가를 거닐었다.
구경거리였다. 졸졸 뒤따라오던 아이들이 이 '해괴한' 모습에 놀라 돌을 던졌다. 타국의 외교관이 돌에 맞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이 아이들을 붙잡아갔다.
그러자 박공사가 뒤쫓아 가서 아이들을 석방시켰다. 이 사건으로 조선 공사의 이상한 모습과 함께 '인자하다'는 소문이 퍼져 더욱 인기를 모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한 옷차림에 놀란 것은 미국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박 공사 일행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1888년 1월 17일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처음 접견하러 갔을 때 박 공사는 대통령을 알아보지 못했다. 왕(王)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식 행사에 동행한 외교관 부인들의 옷차림이었다.
"저 나체의 여인들은 모두 기생이냐?"고 알렌에게 물을 정도였다. 그들은 미국의 귀부인과 딸들이라고 하자 "옷을 입지도 않은 여자를 어떻게 여러 사람 앞에 내보낸단 말이오. 내 겉옷을 벗어 저 여인들의 알몸을 감싸주는 것은 어떻겠소? 저 지체 높은 여인들을 똑바로 쳐다봐도 되는 거요?"라고 했다.
이어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음악이 울리면 남녀가 껴안고 춤을 춘다. 심지어 저고리를 벗어 맨살을 드러낸 자가 태반이다. 속적삼에 뚫은 모양(레이스 장식)을 한 자, 수건을 목에 두른 자, 산발한 채 손질하지 아니한 자도 있다. 어지럽고 아찔한 일이다." 박정양 공사의 복식 문화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입증해준다.
박 공사에게는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해괴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기들의 예의와 규칙에 맞는 '예복'을 갖추어 입었음이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외교 관계에서 서로 간의 옷차림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에 대한 예의는 물론 인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 세계적 관심 속에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젤렌스키의 복장이 논란이 되었다.
구차하게 미국에 도움을 구하러 온 형편에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의 시선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형편을 조금만 고려했다면 그 옷차림에 박수와 애정을 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찢어지고 헤어진 옷을 입고 피 흘리며 목숨 받쳐 싸우고 있는 전쟁 중인데, 과연 대통령의 깔끔한 정장 차림이 적절했을까. 전쟁의 절박함을 옷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궁지에 몰린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프다.
약자의 약점을 공격하는 동물적 수준의 위협으로 상대국을 압박하며,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트럼프의 공격이 이제 서서히 우리를 향하는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70년 한미동맹'을 내세우며 노력하고 있으나 "미(美)서 홀대만 받은 한국 경제사절단"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가슴을 쓰리게 한다. 아니다. 한미 관계는 70년 동맹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동맹 역사다.
우리 경제사절단들이 최대의 예복을 차려입었을 것이다. '그 정장'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다. 결국 튼튼한 '국력'만이 최대의 무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