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옹정제가 '반역자' 다루는 법

오랑캐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 몰아내 명왕조를 회복 하자는 필화사건 수습책 눈길 필화사건의 주역이 자아비판과 동시에 청 왕조의 은덕을 칭송하는 등 사상 전향해 황제 자리에 앉아 자신이 '개조'한 '반역자'입 빌어 ' 자신과 청 왕조 '변호케 만들어

2025-02-10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청나라 제5대 황제 옹정제(재위 1722~1735)는 아버지 강희제, 아들 건륭제와 더불어 이른바 강건성세(康乾盛世)로 알려진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룩한 명군이었다.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비밀에 싸인 즉위 과정이라든가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휘두른 통치술 등 이야깃거리가 많아 중국에서는 소설, 드라마 등으로 많이 다뤄진 '위인'이기도 하다.

요즘 정치판이 어리럽게 돌아가니 변덕스러울 정도로 현란했던 그의 용인술이 담긴 『품인록』(이중톈 지음, 에버리치홀딩스)를 들춰보았다.

옹정 6년 호남 수재 증정(曾靜)의 학생 장희(張熙)가 사천 총독 악종기에게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내용인즉, 오랑캐의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 왕조를 회복해 한인들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악종기는 송나라 충신 악비의 후예이고, 청나라는 송의 숙적인 금나라에 이어 오랑캐가 세운 나라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만 해도 한인 지식인들 사이엔 이적(夷狄)에 충성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위협적이었고, 장희의 편지 역시 저명한 문인 여유량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악종기는 장희의 편지를 옹정제에게 보고하는 바람에 대대적인 필화사건이 벌어졌다. 여유량 본인과 아들, 가족, 문인들이 부관참시 혹은 참수되거나 변방의 노예로 보내졌다. 한데 눈길을 끄는 것은 증정과 장희에 대한 처분이다.

증정은 자신이 쓴 『지신록』에서 부친 모살, 충신 주벌 등 옹정제의 열 가지 죄상을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으나 사건 후에 낸 『귀인설』에서는 자아비판과 동시에 청 왕조의 은덕을 칭송하는 등 사상 전향을 했다. 옹정제는 『귀인설』에 여유량 사건의 전말과 자신의 생각을 보태 4권 12만 자로 이뤄진 『대의각미록』를 만들어 전국 각지에 배포하여 이를 학습, 토론하게 했다.

이와 관련해 증정과 장희는 『대의각미록』의 최고 해설자로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는 등 맹활약했다. 목이 잘리기는커녕 체제의 옹호자로 영화를 누린 것이다.

이런 조치는 '철혈황제'로도 불린 옹정제의 용인술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는 신하들에게 "이런 괴팍한 자는 기발한 방법으로 요리해야 한다"고 흡족해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개조'한 '반역자'의 입을 빌어 자신과 청 왕조를 변호하게 만들었으니 그 설득력은 더 컸을 것이다.

요즘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정치판에서 그런 정치력을 기대할 수 없을까. 이런 용병술이 발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개심'이든 '변절'이든 '포용'이든, 상대 진영의 대표적 명사 또는 논객이 깃발을 바꿔 들도록 한다면 그 효과는 더 클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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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