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세상만사] ⑦ 겨울밤의 '전설'

살기 형편없던 시절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서로 부둥켜안고 삶의 켜가 층층으로 쌓인 추억 천렵(川獵)으로 살 오른 물고기 사냥에 좀이 쑤신 조무래기들 바께쓰 들고 따라 나서겠다고 생 떼 여름 천렵이 냇가 나무 그늘 아래 망중한이라면 겨울 천렵은 혹한 맞서는 농투성이의 친목 모꼬지

2025-01-31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동지가 지나 한 달여가 됐는데도 낮은 기껏 노루꼬랑지만큼 자랐을 뿐 여전히 밤은 두텁고 길다. 맘이 허전해서 그런가,

동짓달이나 섣달이나 그게 그거다. 밤이 길면 길수록 불면이 고통스럽고 서러운 게 나만의 일이 아닐 테지만 올 들어 유난스런 건 무슨 까닭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이 길어 반드시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허구한 날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 보면 때론 기나긴 밤이 오래 전 망각의 저편 너머로 데려가 생각만 해도 절로 행복해지는 추억들과 해후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칠 할이 하릴없는 잡념의 늪을 헤맨다면 삼 할은 샹그릴라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는 겨울밤의 이중성(二重性)-.

#나 같은 시골뜨기한테는 겨울밤이 전설처럼 아련한 향수의 창고다. 먹는 것, 입는 것이 모두 형편없던 시절 기나긴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 부둥켜안고 복작복작 살아내던 삶의 켜가 층층으로 쌓여온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대충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만 해도 농한기(農閑期)란 말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농업 말고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시피 하던 시절이라 한 해를 농사를 기준으로 구분 지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가 한창일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만큼 분주하다고 해서 농번기(農繁期)라 하고, 가을 추수에 김장까지 끝내면 대부분 딱히 할 일이 없어 손을 놀리는 판이라 농한기라 했다. 이런 호칭은 비록 도시에 살더라도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이 많아 전 국민적으로 통용되는 계절구분이었다. 요즘이야 중부지방에서도 맨 윗자락인 휴전선 근처에서까지 한겨울 비닐하우스가 널려 있지만 그 시절엔 상대적으로 따듯한 남녘땅의 일부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집집이 구들장 덥히느라 온 산이 민둥머리가 된판에 난방이 절대로 필요한 비닐하우스 농사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다부지게 할 일이 없으니 남정네들은 날이 좋으면 산에 가 땔나무 한 짐 해다놓고 빈둥대는 게 일이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삼삼오오 모여 놀 궁리를 짜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것은 물고기를 잡는 천렵(川獵)이었다. 한겨울에 웬 천렵이냐고? 얼음을 깨고 웅덩이를 푸거나, 반두와 삼태기, 커다란 쇠망치 등 채비를 하고 개울로 가면 물고기가 지천이었으니까. 물고기들도 여름보다는 한결 더 살이 올라 있고 시간도 더 널널하니 외레 노는 맛이 나았다.

개중에는 고수가 있게 마련이어서 물고기가 깃들어 있을 법한 바위를 찾아 반두나 삼태기를 둘러 바친 뒤 큰 쇠망치로 사정없이 내려치면 충격파로 부레가 망가진 송사리, 피라미, 중태기, 미꾸리, 기름종개 등 비교적 작은 놈들이 허연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스멀스멀 떠올랐다. 때로는 둠벙을 찾아 자석식 전화기에 쓰이는 수동식 발전기나 자전거의 헤드라이트용 발전기를 돌려 물고기를 감전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했는데 이번엔 제법 덩치가 있는 붕어, 빠가사리, 뚜굴무지, 꺽지, 모래무지, 쏘가리에다 뱀장어, 심지어 자라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도 저도 아니면 볕이 잘 드는 논두렁 밑 논바닥을 괭이로 찍어내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다. 으레 이런 자리는 물이 사철 질척이는 곳이라 한겨울에도 설 얼기 때문에 가을에 벼를 베어낸 뒤 미꾸라지 밥으로 메밀대와 소똥을 넣어 둔 터라 한번 찍어 낼 때마다 개흙 반 미꾸라지 반으로 득실거렸다.

#물고기 잡이는 주로 힘이 펄펄 넘치는 청년들이 하지만 노인들이나 조무래기들도 늘 꼽사리 끼곤 해 온 동네가 왁자지껄했다. 이런 객꾼들을 위해 냇가 서덜이나 논바닥엔 으레 모닥불이 지펴졌는데 고기잡이꾼들도 간간이 몸을 녹이고 다시 개울로 가는 등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겨우내 한 벌뿐인지라 땟국이 자르르한 솜바지저고리 차림의 영감들은 장죽을 뻐끔거리며 불을 쬐다가 뭣이 궁금한지 툭하면 개울가로 나와 농(弄)삼아 훈수를 던진다.

"야 인석아, 된 밥 먹고 진똥이라도 싸야지 그게 뭐냐. 오함마에 공갈바람을 넣었으니 행여 괴기덜이 날 잡아 잡수 허구 가만히 있을라~."

허파를 뒤집는 염장질이 아니라 힘돋이 객설이 뻔하지만 힘쓰느라 연신 기차 화통처럼 입김을 내뿜던 망치질 꾼 젊은이도 볼 멘 듯한 대꾸로 받는다.

"방금까지만 해두 삼천리 괴기덜이 죄다 모여 용궁잔치를 허구 있었는데 영감님이 출두허니 한 놈두 남김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나봅니다~."

"예끼 이눔아!"

같은 성받이끼리 모여 사는 마을이라 애 어른 간에도 항렬이 얽히고설켜 복잡다단하지만 족항(族行)을 따지지 않고 이물없이 주고받는 말싸움(?)에 개울가가 한바탕 웃음판이 돼 쌔하던 공기가 한결 누그러들고, 그 소리에 놀랐는지 멀쩡하던 물고기들도 배를 뒤집는다.

#이날은 조무래기들도 좀이 쑤셔서 "동상 걸리면 큰 일 나니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말고 방에 처박혀 있으라."는 어른들의 으름장에도 핫바지에 방귀 새듯 슬금슬금 빠져나와 맨날 얼음을 지치며 놀던 썰매장 대신 천렵놀이에 끼어들곤 했다. 변변한 장갑 하나 없이 한껏 곱은 손으로 생철 바께쓰를 들고 따라 다니겠다고 떼를 써보지만 벼락 호통을 맞고선 이내 모닥불 곁으로 쫓겨 가고야 만다. 하지만 이만한 일로 주눅이 들 거면 애저녁에 집에서 나올 악동들이 아니었으니 땔감을 구합네 하고 장마철에 떠내려 온 나무쪼가리라도 줍겠다며 물고기 잡이 현장을 기웃거리곤 했다. 결국 이런 꼬맹이들과의 밀당은 어른들이 안쓰러운 나머지 수지로 건진 물고기를 한 양푼나마 앵기고 나서야 끝나는 법. 아이들은 벌건 잉걸불 여분댕이에 전리품(?)을 쏟아 넣고 익기 무섭게 달려들어 꺼내먹는 것이었다. 특히 논바닥에는 볏단으로 불을 피우는데 미꾸라지를 구워먹는 데는 그만이어서 시커먼 검댕을 털어낼 것도 없이 한입 베어 물면 짚불 내음이 진동하는 쌉싸레한 맛에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을 짓던 얼굴, 얼굴들이 눈에 삼삼하다.

#겨울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을 무렵이면 바께쓰로 하나는 좋이 넘쳐 서둘러 마을로 돌아와 물고기에 왕소금을 뿌려 해감을 시킨다. 이십여 분 기다려 몸속에 있던 진흙 등을 게움박질한 물고기는 이번엔 북북 문질러 끈적거리는 물질을 없애고 나서 밸을 따면 그대로 가마솥으로 직행했다. 솥은 이미 된장과 고추장을 알맞춰 풀고 잘 손질한 시래기며 우거지, 고사리, 토란대, 호박고지, 무 ,감자 등 야채에다 숭숭 썬 대파와 마늘, 고춧가루로 한껏 우러난 국물이 설설 끓고 있기 마련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운탕을 먹을 수 있었다. 민물고기란 게 본디 덩치(?)에 비해 뼈만 악셀 뿐 살집이 별 볼 일없는 데다 푹 고다시피 해 살은 온데간데없고 얼큰한 국물에 씹을 거리로 넣은 우거지 등 야채를 건져먹는 게 매운탕 맛의 팔 할. 여기에 막걸리 건 막소주 건 양재기에 듬뿍 따라 서너 거리 곁들이면 그야말로 함포고복(含哺敲腹)이라, 엄동(嚴冬)이고 뭐고 온 세상이 발아래 든 듯했다. 이따금 수제비를 뜨거나 잔치국수가락을 '쌩'(삶아 헹구지 않은 채 그대로)으로 털어 넣어 '털래기'를 만들면 안주도 늘거니와 요기를 채우는데도 그만이었다. 여름엔 달랑 솥단지만 있으면 아무 네 꺼 가리지 않고 호박이며 감자, 고추, 파를 후려다 되는대로 숭겅숭겅 잘라 넣어 짙푸른 야생의 맛이고, 겨울엔 감자 한 알, 움파 한 단이라도 일일이 추렴해야 하지만 제 각각 갈무리한 정성과 손맛이 한데 버무려진 대동(大同)의 맛이 언제나 그럴싸했다.

여름 천렵이 냇가 나무 그늘에서 벌이는 망중한(忙中閑) 풍류라면 겨울 천렵은 혹한을 맞서는 농투성이들의 친목 모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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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