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44)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회장이 구조조정 총대 맨 임원에 '청탁' 했다가 퇴자 당하기도

2025-01-21     특별기획팀

최종건은 훌륭한 인재를 모으고 이들이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와 조직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인재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무한한 신뢰 관계를 맺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에게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기업가는 회사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기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조화를 이뤄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사업을 하며 깨달은 철학이었다.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로 기업을 일으킬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최종건은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성격으로 그 사람의 판단과 능력을 믿고 존중했다.

1950년대 말 어렵게 마련한 산업 자금 차관의 용처를 두고 직물기를 늘릴 것인가, 염색가공 시설을 들여올 것인가로 회사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있을 때였다. 당시 봉황새 이불감의 큰 성공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염색가공비로 너무 많은 지출이 발생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최종건은 염색가공 시설을 보강하기로 했다.

하지만 염색기술 책임자 최옥균이 결정한 새 기계의 성능이 자못 의심스럽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임원들은 다시 차관 용처에 이견을 보였다.

안전한 결정을 위해서라면 결정을 철회할 수도 있었지만, 최종건은 기술책임자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최종건의 스타일이었다.

1966년 수립한 '선경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계열사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최종건은 철저하게 책임 경영을 추구했다. 어려운 일에 부딪힌다거나 중요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직접 선두에서 해결에 나섰지만, 그 외의 경우 그는 신뢰 경영을 통해 오직 그룹의 발전과 비전에만 집중했다.

1971년 초 부채에 허덕이는 선경직물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특단의 감원 조치를 단행할 때였다. 세무직 공무원 출신의 원칙주의자인 재무담당이사 한상설이 책임을 맡아 인원 감축을 주도했다. 안타깝게도 인원 감축 대상자에는 최종건의 수원집 식모의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정을 들은 최종건은 한상설을 따로 불러 식모 남편을 살려 놓으라고 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원칙이 무너지면 말썽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회장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최종건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한상설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원시의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최종건은 경영의 핵심은 조직 체계의 확립에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는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이 훈련된 중간 관리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사람에 맞춰 조직 체제를 운영하는 것을 허점으로 보았다.

반대로 선진국 경영 방식이라 해서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 또한 제대로 된 조직 체계가 아님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우리나라와 선경의 실정을 감안하여 선경만의 조직 체계를 도입했다. 그룹 리더를 한 사람 내세우고 그 밑에 사원들이 모이게 하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이는 부장 중심으로 모든 일이 움직여 나가게 되고 자연히 사원들은 부장을 리더로 신뢰하게 되는, 조직의 중간층을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최종건은 이처럼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해 훈련된 중간 관리층을 확보하며 선경의 힘을 키워나갔다. 이를 통해 확립한 인재 양성의 저력은 훗날 선경이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