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오 노무사의 노동법률 이야기] (55) 워라밸과 청년 실업
연간 공휴일 수가 세계에서 뒤 떨어지지 않아 때론 '워라벨 논란' 공허 업무의 효율과 질을 중시하는 시대라는 주장도 경영자는 가려 들어야
최근 뉴스나 인터넷상 글들을 보면, 기업의 노동법률적 이슈는 "직장내 괴롭힘"이고, 인사관리상 주제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일 것이다. "워라밸"을 직역하면, '일과 삶의 균형'인데, 관련 기사들의 주요 내용은, "요즘 MZ세대들은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을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를 제치고 취업희망 기업 1순위로 꼽는다"며, 심지어 "일과 삶의 균형이 시대의 대세이니, 각 회사들과 간부들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며 준엄하게 경고(?)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워라밸" 관련 논의는 다음의 모순, 나아가 뭔가 공허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첫째, 우선 "일과 삶의 균형"이 사실 무슨 개념인지가 정확하지 않다. 얼핏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직원들이 원하지 않으니 회사도 시키지 말라"는 이야기 같기도 한데. 이미 우리나라 노동법은 주 52시간제 시행을 하면서, 직원에게 초과근무를 시키면 회사대표까지 구속시킬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됐다. 따라서, 만약 이런 의미로 "워라밸"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전혀 무의미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의 "워라밸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간 공휴일 수도 세계에서 몇 번째로 많다.
둘째, 회사와 근로자의 근로계약도, 물품공급계약처럼, 노무 "공급계약"이며, 따라서, 근로자는 근무시간 동안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약칭 '선관의무', 성실의무)"를 기본으로 겸직금지 의무, 회사 비밀 유지 업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근무시간 외나, 주말에는 얼마든지 개인 생활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굳이, "워라밸"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워라밸" 주장은 "그렇게 애써가며 회사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풍기기까지 하는데, 그런 의미로 "워라밸"을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워라밸"이 노동운동적으로 악용되거나, 근로자의 직무태만까지도 인정하자는 뉘앙스를 풍기면, 주장 동기의 순수성이 의심 받는다.
셋째,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율은 최고 수준인데, 그렇다면 일하고 싶어도 취업할 수 없는 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이들은 "워라밸"은 둘째치고, 당장 생존의 문제가 걸린 취업을 우선시 할텐데, 취직자리도 못 구한 이들에게 과연 "워라밸"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청년세대들 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워라밸을 안하면 인력도 못 구한다"는 식으로까지 "워라밸"을 강조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어떤 사람은 경제신문에 "시대가 변했다. 과거 30년이 일 중심의 사회였다면,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라는 컬럼을 기고했는데, 회사 조직의 목적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회사라는 곳이, 직원들 개인마다 각각 다른 수백, 수천의 "삶"을 생각하고, 그것과 일과의 균형 맞추는 것을 고민할 정도로, 한가로운 조직은 아니다.
넷째, 이렇게 "워라밸 필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회사 조직 목적·특성이나 경영의 실상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워라밸"을 강조하다 보니, 그들이 내세우는 방법론들을 봐도 "농업적 근면성보다는 업무의 효율과 질을 중시하라", "일은 일이고 삶은 별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와 같이 별 내용이 없거나,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야 한다"와 같이 근무능력이 뛰어난 직원에게나 가능한 방법론, 또는 "일의 의미, 목적, 방향성 그리고 기대하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라" 등의 비현실적 주장도 한다.
도대체, 얼마나 반복해서 직원에게 설명하라는 말도 없이 말이다. 특히, 일을 반복적으로 설명해줘야 하는 직원은 워라밸과 관계 없이 이른바 '문제 직원'들이며 이런 직원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마치 정답인 양 나도는 이야기들은, 대개 근로자 편에 서서 주장되는 담론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가려내서 들을 수 있는 능력도 경영자의 필수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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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졸업 후 중앙일보 인사팀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년 이상 인사·노무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율탑노무사사무소(서울강남) 대표노무사로 있으면서 기업 노무자문과 노동사건 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회사를 살리는 직원관리 대책', '뼈대 노동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