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43)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최종건, 평소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 있어 그를 따르고 돕는 사람 많아 공장 다닐 땐 월급으로 콩 볶아 배고픈 직원들에 나눠줘 결혼하는 직원에겐 이불감 두어 벌은 기본에 재봉틀까지

2025-01-08     특별기획팀

최종건은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언제나 그의 주변에는 그를 따르고 믿고 돕는 사람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인간적인 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으며, 그 매력은 최종건이 평생 가슴에 간직했던 인간 중심주의, 즉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종건이 어릴 적 익힌 <명심보감>에서 가장 좋아한 말은 순자의 "선의이후리자(先義而後利者)", 즉 의를 앞세우고 이익을 뒤로하라는 말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고, 무엇보다 의리를 중시했다.

최종건은 누구보다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잿더미에서 선경직물을 일으킨 이유였다. 그는 공장을 가동해 한 사람이라도 더 일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빈곤을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를 바랐다. 그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아끼는 기업가였다.

최종건

최종건의 직원들에 대한 배려와 애정은 열여덟 살에 직물 공장의 생산부 조장이 되었을 때부터 남달랐다. 그는 월급을 털어 집에서 콩 한 말씩을 볶아서 휴식 시간마다 배고픈 직원들에게 나눠주었으며, 휴일에는 직원들과 서호천에 함께 나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는 작은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전쟁 전후, 악화된 전력 사정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날이 이어지자 최종건은 그때마다 촛불을 켠 채 여성 직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당시 여성 직원들은 가정 형편상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한글을 모르면 무시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이들이 인생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글 교실'을 시작했던 것이다.

남북적십자회담

선경직물 창립 이후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최종건은 직원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야근이 이어지는 날이면 껌과 알사탕을 사와서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마른 오징어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결혼하는 직원들에게 후한 보너스를 챙겨 주는 것은 최종건이 만든 선경직물의 전통이었다.

이불감 두어 벌은 기본에 재봉틀까지 직접 선물로 챙기며 세심한 신경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주머니 속에 늘 양복이나 구두 티켓을 준비해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최종건은 회사나 직원이 같은 배를 타고 가는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 초반, 민주화 바람이 불며 노사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라 많은 기업이 조업 중단 사태 등 위기에 처했을 때도 선경은 모두가 똘똘 뭉쳐 경제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평생을 선경에서 일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했다. 또한 평소 직원들의 호칭을 직급 대신 이름으로 격 없이 부르면서 벽을 허물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고스란히 존경과 사랑, 포용과 신뢰 속에 일체감을 지니는 선경의 기업 문화로 형성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