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절대왕권의 '代行' 역할은?
수렴청정은 외척이 권세 얻는 자리가 아니라, 어린 임금이 친정 할 때까지 왕조 지탱 순조 때 마련된 '수렴청정절목'은 절차와 예우 등을 규정하는 등 정치적 장치도 정교 '대행'의 권한과 탄핵 절차에 관한 규정 미비 등을 보노라면 조상들의 지혜가 그리워
우리 역사를 보면 국왕이 정상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없거나 곤란할 때 '다른 이'가 임금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제도가 있었다. 수렴청정(垂簾聽政), 섭정(攝政), 분조(分朝)가 그것이다.
대신 정치를 한다는 의미의 섭정은, 나이가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인 모후가 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고려 목종 때 천추태후 등 삼국시대와 고려 때 몇 차례 이뤄진 선례가 있다.
분조는 국가 비상시에 국왕의 유고(有故)에 대비하여 국왕이 다스리는 조정과 별도로 왕세자가 관장하는 별도의 조정을 세우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세자 광해군이 분조를 했고, 17세기 정묘호란 때 인조는 소현세자로 하여금 전주로 내려가 분조를 설치하고 백성을 다스리고 군사를 모으도록 했다. 소현세자는 꽤 유능했는지 전주 분조를 철수하는 날 호남 백성들이 송축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대행' 사례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왕실의 여성이 발을 드리우고 그 뒤에서 왕권을 오로지하던 수렴청정이다. 왕의 어머니가 아니라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인 대왕대비가 했다는 점에서 왕의 어머니가 맡았던 섭정과 구분된다. 수렴청정하면 어쩐지 막후 정치와 궁중 암투 같은 음습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건 TV 사극드라마 탓일 뿐 외척들이 권력을 전횡했던 명종 때 문정왕후의 경우를 제외하면 수렴청정의 치세는 대체로 무난했다.
『여성사, 한 걸음 더』(한국여성사학회 기획, 푸른역사)에는 수렴청정을 다룬 글이 실렸는데, 책에 따르면 수렴청정은 원래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의 줄임말이다. 조선 시대에 7차례 행해졌는데 성종이 13세에 즉위하자 조모인 세조 비 정희왕후가 8년 동안 수렴청정한 것이 시작이다. 그중 가장 어렸던 헌종이 8세에 즉위했을 때는 조모인 순조 비 순원왕후가 7년 동안 대신 국정을 살폈다.
그런데 왕이 어리다 해서 무조건 수렴청정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전 신료들의 합의와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거쳐야 하는 등 꽤나 정교한 정치적 장치였다. 순조 때 마련된 「수렴청정절목」은 이에 관한 절차와 예우 등을 규정했다. 이를 보면 발 뒤에 임금이 남면을 하고 앉아 그 위상을 분명히 했으며, 역모, 군사, 국정의 중요한 일은 대왕대비가 직접 결정하긴 했지만 상소와 장계를 임금에게 우선 보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국왕이 간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토록 했다. 이는 일종의 제왕 수업이었으니 이를 통해 국왕은 10대 후반, 늦어도 20세가 되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선입견과 달리 수렴청정은 외척이 권세를 휘두르는 통로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즉위한 임금이 성장하여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왕조를 지탱해 주는 고육책이었다 하겠다. '대행'의 권한과 탄핵 절차에 관한 규정 미비와 이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판의 노란을 보면 어째 조상들의 지혜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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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