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40) 불안 자극하는 군중심리···'절망한 토끼들의 생존결심'
개인은 집단이 답을 알고있다고 믿어 남을 따라하기 십상이지만 그런방식 투자는 위험해 국내 유수의 자산운용사인 에셋플러스는 여의도 대신 제주에 둥지를 틀려다 판교로 선회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는 시골마을에 본사 둬…투자의 고수는 군중을 가장 경계해
어느 날 토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토끼 한 마리가 불쌍한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수리나 늑대처럼 무서운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만 했어." 다른 토끼들도 맞장구를 쳤다. "어디 그뿐인가? 여우나 뱀 같은 짐승들도 틈만 있으면 우리의 새끼들을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이 세상에서 우리처럼 불쌍하고 힘없는 짐승은 없을 거야. 우리는 하찮은 벌레보다도 못해." "그래 이대로 살다간 우리 모두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어." 토끼들은 제각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결국 토끼들은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흥분한 토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수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호숫가에 살고 있던 개구리들은 느닷없이 몰려오는 토끼들의 요란한 발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일제히 풍덩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그러자 제일 앞에서 뛰어가던 토끼 한 마리가 이 광경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게. 쓸데 없이 우리의 목숨을 끊는 일을 그만두자고. 이리 와서 이 개구리들을 좀 보게. 여기에 우리보다 더 힘없고 겁이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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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는 인형으로 만드는 군중심리=토끼들이 집단자살로 내몰리게 된 것은 군중심리 때문입니다. 토끼 한 마리가 부추긴 불안감이 주변으로 번지면서 공포를 자아내고, 이는 전체 집단을 비정상적 행동으로 내몰았죠.
군중심리는 공포 속에서 자라나 파국을 부르고 결국 무고한 희생자를 만듭니다. 군중심리란 다수로부터 영향을 받아 개개인의 태도나 믿음, 감정,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도 한곳에 몰려 있으면 생각 없는 인형이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냉정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군중심리에 젖어들게 됩니다. 같은 생각, 믿음, 심지어 감정마저도 주변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집단적 행동으로 내몰리기도 하지요.
야구장에 가본 사람은 흥분한 군중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과 섞여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껑충껑충 뜁니다. 정치적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쉽게 선동을 당해 자제력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주식시장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 위험이 닥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남을 따라 행동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이 가진 정보에 영향을 받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집단이 답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남을 따라 하는 투자 방식은 아주 위험합니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요. 주식 값이 싼 것은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많은 경우입니다. 군중심리를 좇게 되면 주가가 쌀 때엔 사지 못하지요. 반대로 주가가 오르는 건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들은 이제야 주식시장에 뛰어듭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돈을 버는 이치이지만, 개인들은 거꾸로 투자하며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냅니다.
국내 유수의 자산운용사인 에셋플러스는 한국 자본주의의 메카 여의도에 없습니다. 여의도와 한참 떨어진 경기도 판교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회사 설립 당시 아예 제주도에 본사를 세우려고 부지까지 매입했지만 직원들의 출·퇴근과 고객관리 등의 문제가 있어 판교로 선회했습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 본사는 뉴욕 월스트리트와 한참 떨어진 네브라스카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오마하에 있지요.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군중심리에 맞서는 역발상입니다. 날고 긴다는 투자 전문가들이 모여 있고 시장의 심장이 펄떡거리며 날마다 새로운 정보가 흘러다니는 곳을 그들은 의도적으로 등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낳은 투자성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투자의 고수는 군중을 가장 경계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시장 위험을 줄여주는 '적립식 투자'=일반 투자자도 의식적으로 시장에서 한 걸음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틈만 나면 펀드 수익률을 계산하고 주가를 들여다보거나 증권사의 시황보고서를 읽는 사람치고 투자에 성공한 경우는 드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단적 심리에 휘말려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입니다.
투자 성과를 자주 확인하는 사람은 보유 종목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수시로 목격하게 됩니다. 이익을 보면 더 오를 것 같아 흥분하고 손실이 나면 더 떨어질까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주가를 자주 들여다 보는 사람은 조급증의 포로가 됩니다. 주식시장에 비이성적 과열이나 투매가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증시는 절대 경제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가는 인간 행동의 결정체이고, 시장은 우연이 지배하는 곳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도 우연한 사건 앞에선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만약 우연이 개인투자자들의 집단 광기와 만나면 그건 파국을 뜻합니다. 1987년 10월 뉴욕증시가 폭락한 검은 월요일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투매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증시에서 우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건 분산입니다. 일거에 투자금을 집중시키면 쉽게 위험의 먹잇감이 됩니다. 투자를 시작할 때 한꺼번에 사지 말고 순차적으로 사면 위험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불입하는 적립식 투자가 그것입니다.
적립식 투자는 저금리 시대에 은행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누릴 수 있는 재테크 방법입니다. 또한 변덕이 심한 증시에서 살아남는 수단이기도 하지요. 적립식 투자의 원리엔 시장이 언제 좋고 나쁠지 인간이 알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투자하되 주가가 쌀 때는 많이, 비쌀 때는 적게 사면 평균매입단가를 낮추는, 이른바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 정액 분할 매입)'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매입단가를 낮추려면 쌀 때 많이 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상식적으로 시장이 침체해야 주식을 싸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상식의 역설이 판을 칩니다. 주가가 좋을 때 적립식 투자를 시작했다가 시황이 나빠지면 불입을 중단하거나 상품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스트 에버리징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적립식 투자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시장을 예측하고자 하는 '타이밍(매매시점)'이 아니라 '타임(시간)'에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중간에 손실이 나더라도 납입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손실은 곧 시장의 침체를 의미하므로 오히려 공격적으로 사들어가야 합니다. 손실을 보더라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뚝심 있게 나아가야 적립식 펀드로 승부를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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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