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9) "경제의 앞날 누구도 몰라"···'슈뢰딩거의 역설'
자연 현상 지배 할 수 있다면 미래 예측은 100% 가능하다는 '물리학의 가설'도 틀려 경제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 변화에 절대적 영향을 받고 개인행동은 시시때때로 변해 경제예측 틀리는 것은 근거 되는 분석 자료들이 모두 '흘러간 노래' 라는 점을 꼽기도
점을 잘 치는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그 점쟁이는 찾아오는 손님에게 돈을 받고 미래를 예언해주면서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거나 혹은 어떤 일을 결정하기가 힘들 때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보았습니다. 점쟁이는 다행히 앞날을 잘 맞춘다고 입소문이 나서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때로는 신분 높은 정치가나 돈이 많은 상인까지도 점쟁이를 찾아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쟁이는 점을 보러 찾아온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별로 운이 좋지 못하구려. 여행을 떠나는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당신에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올 거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고 기다리구려."
점쟁이는 찾아온 사람들의 앞날을 척척 예언하면서 자신 있게 충고해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점쟁이의 이웃에 사는 사람이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게 자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네.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집 안에 있는 물건도 몽땅 없어졌다는군."
점쟁이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왜 가만히 서 있는 건가? 어서 집으로 가야지. 빨리 서두르게나."
이웃 사람의 재촉을 받은 점쟁이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다급하게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점쟁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때까지 점을 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소리쳤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있다고 잘난 척하지 마시오. 정작 자신에게 닥칠 일도 모르면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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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점쟁이는 점을 잘 친다고 소문이 났지만 정작 자기의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온갖 이론이나 기법을 동원해도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미래 예측의 부정확성을 설명하는 물리학 이론 중에 '슈뢰딩거의 역설'이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1935년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철로 만든 상자 안에 고양이를 가두고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가이거 계수기, 계수기와 연결된 망치, 독가스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넣었습니다.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은 50%, 즉 반반입니다.
만약 핵이 붕괴하면 망치가 떨어져 유리병을 깨뜨리고 독가스가 방출돼 고양이는 죽습니다. 고양이의 생사 가능성은 50 대 50입니다. 이 고양이는 죽은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일까요. 상자 속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결합돼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상태를 '고양이가 반은 살았고, 반은 죽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고양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슈뢰딩거는 죽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고 고양이의 생사 여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자역학도 이 고양이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현실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자연 현상을 지배할 수 있다면 미래 예측은 100% 가능하다는 물리학의 가설은 틀렸으며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슈뢰딩거의 역설은 경제학으로 넘어왔습니다. 미래의 경제 예측이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10년 후 미래》(청림출판, 2011)를 쓴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학 교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거론하며 "세계 경제를 예측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의사는 어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대략 몇 개월 후에 죽는지 예측합니다. 대개 그 예측은 들어맞습니다. 의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는 전문가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고 예측의 정확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다릅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실제와는 거꾸로일 때가 많습니다.
지난 2019년 말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기획재정부는 2020년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은행과 KDI는 경제가 전년에 비해 2.3%, 기재부는 2.6%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2020년이 열리자마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두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한 예측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경제 예측 실패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1920년대 미국 대공황, 1970년대 석유 파동,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 2022년 말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2023년 미국 경기가 침체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측됐으나 실제로는 실질GDP(국내총생산)이 1분기 2.0%, 2분기 2.1%, 3분기 5.2% 각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책임 있는 정부 기관, 세계적인 경제학자, 주식시장의 손꼽히는 투자 전문가의 경제 예측이 터무니없이 빗나가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 변화에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행동 주체인 개인의 변덕은 죽 끓듯 합니다. 심리와 행동이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지구상에는 80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개인들을 자극하는 외부 변수 역시 무한하게 존재합니다. 수많은 변수는 부동산, 주식, 환율, 금리, 무역, 경제 패턴을 돌변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가 날것으로 표출되는 곳이 증시입니다. 증시는 대중 심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중 심리에 변화가 생기면 증시는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주가를 '경제의 선행 지표'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통 주가가 경제보다 6개월 정도 앞서간다고 합니다. 시장 분위기 변화에 투자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즉각적인 방법이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라 이런 말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기조(펀더멘털)의 변화는 상당히 뒤늦게 나옵니다. 시장이 변하는 시점과 경제 전문가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제시되는 시점 사이에 큰 시간 편차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고 예고할 때쯤이면 이미 경기는 침체의 정점에 있습니다. 아마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을 가장 마지막으로 알아차리는 집단일지도 모릅니다.
◇뒷북치는 전문가들=전문가들이 뒷북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경제 예측의 근거가 되는 분석 자료들이 모두 '흘러간 노래'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과거 정보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앞날을 내다보다는 것은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또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기대에 따라 미리 반응하는 것도 예측력을 약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경기 부진이 예상될 때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기업과 가계는 경기 침체에 따르는 대응을 강구하기 때문에 미래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일 때 정부는 금리를 인하해 시중의 돈줄을 풀 가능성이 큽니다. 풀린 돈은 증시로 몰려들고 소비 심리를 부추깁니다. 소비가 늘면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해 경제가 좋아집니다. 이렇게 되면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집니다. 만약 경제가 좋아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듭니다. 결국 정부는 금리인하 카드를 슬그머니 접습니다. 정부의 금리 인하 방침에 따라 경제가 호전되리라는 예측도 빗나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경제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도 예측의 한계로 작용합니다. 지금의 국내외 경기 상황을 반영한 경제지표들은 빨라야 한두 달 뒤에나 산출되는데, 전망치는 최근 상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가 쉽습니다. 다시 말해 전망 시점에서 가장 가까웠던 시기의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기 상황이 좋을 때는 앞날을 너무 좋게 보고, 나쁠 때는 너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오류가 생기게 됩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 직전의 경제 전망은 항상 장밋빛이었습니다.
그러면 자꾸 틀리기만 하는데 경제 전망을 그만둬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틀릴 게 뻔한데도 경제 전망은 필요합니다. 제시된 경제 예측을 토대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과 가계는 사업계획과 예산을 짭니다. 경제 예측이 없으면 나라가 굴러가기 어렵습니다.
다만 전망 수치 자체보다는 그 근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예상하면서 변수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금리, 반도체를 꼽았다고 합시다. 성장률보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금리 인하는 언제쯤 실행될 것인지, 반도체 경기의 회복 시점은 언제인지 등 '줄거리'를 더 눈여겨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점집에 가는 이유는 불안감을 걷어내고 안심과 확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미래를 낙관하고 매사에 신중하게 행동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경제 전망도 틀리건 맞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됩니다. 경제가 좋을 것이라면 암울한 현실에서 꿈을 꿀 수 있고, 나쁠 것이라면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경제 예측이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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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