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역사 속 '포크'의 등장
유럽도 중세 후기까지 귀족이든 농노든 가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음식 집어 먹어 11세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총독과 결혼한 비잔틴의 한 공주가 처음으로 사용 프랑스 앙리 3세 때 포크 사용 칙령…귀족옷 하얀칼라 보호하려 포크 이용 확산
역사책을 뒤적이다 보면 요즘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랄 때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유럽 궁정문명의 정화(精華)라고 할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엔 당초 화장실이 없어서 귀족들도 정원에서 '실례'를 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이다.
독일의 음식문화 전문가가 쓴 『식탁 위의 쾌락』(하이드룬 메르쿨레 지음, 열대림)에 나오는 '포크의 등장'도 그런 놀라움을 준다. 제대로 된 양식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낯선 식기를 제대로 사용할줄 몰라 은근히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주눅들 것 없다.
이 책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중세 후기까지는 귀족이든 농노든 가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단다. 포크는 11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총독과 결혼한 비잔틴의 한 공주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 포크는 예상과 달리 동양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셈이다. 그녀는 손가락으로는 어떤 음식도 만지지 않았고, 환관들이 잘게 썰어 놓은 음식을 금으로 만든 두 갈래의 작은 포크로 찍어 먹었다고 한다.
이게 당시로서는 꽤나 기이했던지 비웃음과 분노를 샀는데 성직자들은 '신의 선물'을 손으로 만지기를 거부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했단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어서 포크 사용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 출신의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포크를 프랑스에 들여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포크 사용의 이점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달콤하지만 끈적한 과자 등 후식을 손으로 집어 먹고는 냅킨이나 식탁보에 쓱쓱 닦는 게 보통이었다. 사상가이지 수필가로 이름을 떨친 몽테뉴가 자신의 『수상록』에 "식탁보 없어도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하얀 냅킨도 없이 독일식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대단히 불편한 것"이라 썼을 정도였다. 그러니 비록 사용이 불편하긴 했지만 포크는 이런 난처함을 덜어주어 결국 유럽식 식사 예절로 자리 잡게 되었다.
카트린의 아들인 앙리 3세 때는 포크를 사용하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는데 여기에 또 기막힌 사연이 있다. 당시 귀족 사회에선 커다란 프릴로 된 하얀 칼라가 붙은 옷이 유행이었는데 포크의 도움 없이는 칼라를 더럽히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포크의 보급이 빨라졌단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지역적으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사회적으로는 상층에서 하층으로 포크 사용이 늘어나면서 17세기에는 베르사유를 거쳐 독일까지 보급되었다. 한데 여기서는 포크에 대한 거부감이 만만치 않아 풍자작가 미하엘 모쉐로쉬는 포크 사용을 "머지 않아 사라질, 이국에서 넘어온 해학극" 정도로 치부하면서 "샐러드를 손으로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하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맛있는' 손가락 대신 딱딱하고 뾰족한 포크의 끝을 느끼는 것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에티켓이란 인식이 유럽 사회 전반에 자리 잡게 되었으니 세상일을 두고 함부로 이러쿵저러쿵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범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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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