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40) 최종현의 시계는 10년 빨랐다
"미래를 지배하는 자의 달력은 10년이 더 빠르다"가 최 회장 경영 철학 앞을 내다 보는 안목과 준비는 고스란히 SK의 도약과 발전으로 이어져 최종현이 타계하자 이건희 회장"소리 없이 준비하는 미래 설계자"추모
최종현이 그룹을 이끌며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고민은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그룹 회장으로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회장이 된 다음부터 결재란에 회장이 도장 찍는 자리를 없앴는데, 이는 회사의 최고 결재권자는 사장이라는 자율경영의 철학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회장이 할 일과 사장이 할 일이 다르다는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최종현의 시계는 언제나 10년이 빨랐다. 그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파악하고 현재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통찰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일상화했다. "미래를 지배하는 자의 달력은 10년이 더 빠르다." 이는 그의 경영 철학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1979년 가을 최종현이 직원들과 선경경영관리체계(SKMS)에 대한 심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임원이 회장실로 들어와 다급한 어조로 당장 모 은행장을 만나러 갈 것을 권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우니 대출을 받는 데 힘을 실어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행장실은 자네 혼자서 가도 돼. 나는 지금 더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있어. 돈을 빌려서 부도를 막으면 뭐 해. 우리 선경 경영자들이 경영관리체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돈 빌려서 회사를 살려봐야 아무 소용없어."
SKMS는 기업이 영속하기 위한 기틀로 당장의 어떤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 최종현의 스케일과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종현의 1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이에 대비한 체계적인 준비는 고스란히 SK의 도약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197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를 천명한 이후 꾸준한 준비와 인내를 통해 1980년 마침내 유공을 인수한 것은 물론, 1984년 국내 기업 최초로 미주 경영기획실을 출범시킨 것을 시작으로 1994년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한 것 역시 10년 앞을 내다본 결과였다. 그는 10년 앞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자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삼성그룹의 총수 이건희는 1998년 최종현이 타계했을 때 추도사에서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애국 기업인이자 우리 경제의 발전을 앞장서 이끌어온 참된 경영인"이라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이 그를 평가했다. 이것은 최종현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10년을 소리 없이 준비하는 미래 설계자였다."
이처럼 최종현은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자이자 설계자였다. 10년 앞을 내다보는 그만의 노력과 원칙은 선경이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극복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