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64) "콜럼버스의 달걀이 별거냐"

유엔군 묘지를 푸르게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자 '보리싹'으로 잔디 처럼 단장 "풀만 푸르게 나 있으면 되는 거냐"묻고 공사비의 세 배를 요구해 대박 터트려

2024-11-05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정 회장은 미군정 말기인 1947년에 현대건설의 모태인 현대건업사를 차렸다.

마침 주한 미군 통역으로 근무한 첫째 동생 인영 씨의 도움으로 주한 미군 관련 공사를 많이 따냈다.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 갔던 정 회장은 9·28 수복 때 미군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미8군 발주 공사를 거의 독점 하다시피 했다.

휴전 직전인 52년 12월, 정 회장의 뚝심과 아이디어가 번쩍인 사건이 생겼다. 당시 현대는 부산의 유엔군 묘지 단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전에 참전한 각국의 합동사절단이 내한했다. 일정 중에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는 계획도 있었다.

명색이 사절단으로 한국까지 왔는데 한국전에 참전해서 사망한 자국의 군인들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유엔군을 안장한 묘지는 아직 제대로 모습도 갖추지 못했고, 전시에 뗏장도 구하지 못해 황량한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전쟁

파견국의 사절단이 참배하는데 남의 나라의 전쟁터에 와서 산화한 자기 군인들을 이렇게 초라한 곳에 모셨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8군 사령부는 정 회장에게 기상천외한 주문을 했다.

"유엔군 묘지를 푸르게 만들어달라."

12월이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엄동설한에 무슨 재주로 묘지를 푸르게 만들 것인가. 온실이나 비닐하우스는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게다가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참배는 불과 닷 새 후였다.

모두가 불가능이라며 포기하려는 순간 정 회장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 회장은 발상의 전환을 얘기할 때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별거냐"라고 얘기하곤 했다.

정 회장은 미8군 관계자에게 "어떻게든 풀만 푸르게 나 있으면 되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렇다"라는 대답을 들은 정 회장은 아이디어 비용을 포함해서 실제 공사비의 세 배를 요구했다. 세 배 아니라 열 배라도 아깝지 않은 그들과 즉석에서 '유엔군 묘지 녹화 공사'라는 계약서를 썼다.

그러곤 즉시 주변에 있는 트럭 30대를 끌어모았다. 정 회장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낙동강 주변 모래벌판에 있던 보리밭이었다. 보리는 이제 막 푸릇푸릇 싹을 틔우고 있었다.

정 회장은 보리밭을 통째로 산 뒤 보리싹들을 떠서 묘지에 옮겨 심었다. 훌륭했다. 이렇게 엄동설한에 '푸르른 묘지'는 완성됐다. 잠깐 와서 참배하는 사절단이 이게 잔디냐, 보리냐 물을 것도 아니었다. 속임수라고 비난할 여지도 없었다.

계약하고 나서도 반신반의하던 미군 관계자들은 정 회장의 마술 같은 솜씨를 확인하고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더풀"을 연발했다.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굿 아이디어"를 외쳤다.

물론 정 회장은 이듬해 봄에 보리를 걷어내고 잔디를 입히는 작업까지 마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아직 정비 작업이 끝나지 않아 맨흙이 드러난 한강 고수부지에 푸른색 페인트를 뿌려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처럼 보이게 한 적이 있다.

정 회장의 보리싹 아이디어는 그보다 36년 전이었는데도 훨씬 독창적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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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