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6) 조삼모사와 현재가치의 '마법'
매가 손안에 넣은 덩치 작은 나이팅게일을 덩치가 큰 비둘기보다 소중하게 여긴 까닭 하루에 주는 먹이양은 똑같지만 먼저 많은 것을 주는 것을 선호한 원숭이선택은 현명 워렌 버핏의 투자원칙은 '언제 잡힐지 모르는 비둘기보다 손 안의 나이팅게일에 집중'
나이팅게일은 몸이 아주 작았지만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나운 매가 나이팅게일을 발견했습니다. 매는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 녀석이라도 잡아먹는 것이 좋겠어."
배가 몹시 고팠던 매는 번개처럼 날아와서 나이팅게일을 잡았습니다. 매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고 있던 나이팅게일은 달아 날 수 없었습니다. 당장 목숨이 끊어지게 생긴 나이팅게일은 간절한 목소리로 매에게 애원했습니다.
"매님, 저는 아주 작은 새입니다. 매님이 저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겁니다. 저를 잡아먹더라도 매님의 배를 채울 수는 없을 겁니다. 제발 저를 놓아주십시오. 정말로 배가 고프시다면 저보다 더 큰 비둘기나 토끼를 잡아 먹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하지만 매는 나이팅게일의 애원을 뿌리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작은 새야. 하지만 내가 아직 구경도 못한 먹이를 쫓기 위해 이미 내 발톱 안에 들어온 먹이를 놓아준다면 그보다 더 멍청한 짓이 어디 있겠니? 그러니까 너라도 우선 확실하게 먹어두는 것이 좋겠어."
불쌍한 나이팅게일은 매의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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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와 현재가치=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새 두 마리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숲 속에 새가 아무리 많더라도 먹잇감으론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새가 훨씬 낫다는 말이겠죠. 경제생활의 목적은 효용, 즉 주관적 만족감을 최대한 늘리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효용은 시간과 반비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오늘의 효용이 내일의 효용보다 더 값진 것이죠.
중국 고사 한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먹이가 부족해지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했습니다. 원숭이들이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 견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원숭이들은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받거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받거나 하루에 모두 7개를 받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도 4개를 먼저 받는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주인에게 설득당한 것입니다. 반면 저공은 같은 수의 도토리를 주고도 원숭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유명한 '조삼모사(朝三暮四)'입니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결과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해 사기나 협작술에 빠뜨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과연 고사 속 원숭이들은 정말로 미련한 짓을 한 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원숭이들은 미련하기는커녕 사람보다도 훨씬 똑똑한 녀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먹이라고 해도 저녁에 먹는 것과 아침에 먹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원숭이들은 '현재가치'의 개념을 이해한 경제적 동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그럼 현재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해보겠습니다. 누구라도 당장 100만원이 1년 후에 받게 될 100만원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100만원을 빌려쓴 사람이 1년 후에 이자를 붙여 이보다 더 큰 금액을 갚아야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만약 1년간의 이자율이 25%라면 1년 후에 받게 될 100만원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치, 즉 현재가치는 80만원입니다. 100만원이라는 금액에 이자율을 더한 1.25로 나누어 할인함으로써 80만원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미래에 발생할 효용이 현재가치로 따져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한나절 동안의 이자율이 1%라 가정하고, '조삼모사'의 두가지 먹이주는 방법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비교해 보죠. 우선 처음 제의한 대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는 경우의 현재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녁에 먹을 도토리 4개/이자율 1.01=3.96. 여기에 아침에 먹을 도토리 3개를 더하면 하루에 먹는 도토리는 6.96개. (아침에 먹을 도토리 3개의 현재가치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3개)
이번에는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먹는 방법의 현재가치를 계산해봅시다.
저녁에 먹을 도토리 3개/이자율 1.01=2.97. 이에 아침에 먹을 도토리 4개를 합치면 하루에 먹는 도토리는 6.97개. (아침에 먹을 4개의 현재가치도 이자가 없으므로 그대로 4개)
이 두 방법 중 후자가 더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후자와 전자의 차이가 0.01개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 쌓이면 무시 못할 크기가 됩니다. 이 미세한 차이까지 알고 있던 저공의 원숭이들은 우둔하기는커녕 현명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렌 버핏의 제1 투자원칙 '손 안의 새'= 다시 매와 나이팅게일 우화로 돌아가서, 매가 왜 나이팅개일을 살려주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매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비둘기보다 눈 앞에 있는 나이팅게일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매는 현재가치 계산법으로 현재와 미래의 먹잇감을 평가한 셈입니다.
미국의 투자 전설 워렌 버핏은 매의 '손 안의 새' 사냥법을 투자원칙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투자자 자신의 능력범위에서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때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을 싸다는 이유로 사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비둘기나 토끼보다 손 안의 나이팅게일에 집중한 매를 닮았습니다. 버핏은 "적당한 회사를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라"며 훌륭한 기업의 조건은 사업을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좋으며,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있는 회사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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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