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4) 여우의 욕심이 '낙수효과' 기대 저버려
제우스 신이 영리한 여우를 '동물의 왕'으로 삼고자 했으나 탐욕스런 모습보고 낙점 철회 부자나 대기업이 더 잘되면 하위 계층과 소기업에게 이익이 된다는 '낙수효과' 작동 불명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는 소득세와 법인세 대폭 내려 경제 살렸지만 결국 양극화 후유증 저소득층에게 재정 지원 확대하면 조세부담 커지고 근로의욕 떨어지는 등 부작용도 있어
모든 신의 왕 제우스 신은 동물들을 위해 왕을 뽑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우스 신은 땅을 내려다보면서 동물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사자는 몹시 용감했으며 곰은 힘이 셌습니다. 백조는 우아했으며 공작은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우스 신은 여우를 발견했습니다. 제우스 신은 여우가 총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여우에게 왕의 자리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제우스 신은 여우를 불러 말했습니다.
"여우야 너를 동물의 왕으로 삼겠다. 탐욕을 부리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위해 숲속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느냐?"
"예, 제가 왕이 된다면 숲속 나라의 모든 동물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우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제우스 신의 결정에 따라 여우는 숲속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우스 신에게는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신분 변화에 따라 과연 여우가 그 타고난 탐욕을 버렸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우스 신은 여우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여우가 가마를 타고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입니다. 제우스 신은 그 가마 행렬 앞에 풍뎅이 한 마리를 풀어놓았습니다. 풍뎅이는 여우가 평소에 즐겨 먹는 간식이었습니다. 풍뎅이가 눈앞에 날아다니는 것을 본 여우는 입에 군침이 돌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는 그만 참지 못하고 가마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풍뎅이를 잡아먹기 위해 왕의 체통을 지키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우의 모습을 본 제우스 신은 화가 났습니다.
"동물의 왕이란 놈이 풍뎅이 하나 때문에 그렇게 뛰어다니고 있단 말이냐? 너는 동물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
이렇게 말한 제우스 신은 여우를 다시 평범한 짐승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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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 제우스 신은 여우를 통해 동물들을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사자나 곰처럼 힘만 있으면 약육강식이 벌어지고, 겉모습만 그럴듯한 백조와 공작은 리더십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제압해 동물의 왕국에 평화가 깃들게 하려면 여우의 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일종의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겁니다. 그러나 낙수효과도 당사자가 탐욕스러우면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보단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독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낙수효과'란 영어 'trickle down effect'에서 비롯된 말인데, 직역하면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시는 효과'라는 뜻입니다. 이는 경제학에서 부자나 대기업의 부가 증가하면 점차적으로 하위계층이나 소규모 기업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을 묘사합니다. 다시 말해 부자가 더 많은 돈을 벌어 투자할 경우 이것이 일자리 창출이나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나라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낙수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윌 로저스(Will Rogers)라는 유머 작가가 미국의 제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대공황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을 비꼬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로저스는 "상류층 손에 넘어간 모든 돈이 부디 빈민들에게 낙수되기(trickle down)를 고대한다"라고 풍자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이 말은 미국 경제정책의 신조가 됐습니다.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서입니다. 1980년대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는 두 차례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속에서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을 겪고 있던 미국 경제 회복을 위해 '레이거노믹스'라는 처방책을 내놓았습니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은 부유층의 소득을 증가시켜 저소득층으로 흘러 내려가게 하는 것이고, 그 실천방안으로 부유층 감세, 즉 세금을 깎아주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는 '래퍼곡선(Laffer Curve)'이었습니다.
세율이 오르면 일반적으로 세수도 늘어나지만, 적정세율을 넘어서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든다는 것이 래퍼곡선 이론의 요지입니다. 과도한 세금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 오히려 세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까요?
한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했다고 가정해보죠. 이 회사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를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합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직원들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됩니다. 이같이 기업의 성장과 투자가 일자리 창출과 소비 증가를 이끌어내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 낙수효과의 선순환 구조입니다.
낙수효과는 나라의 정책 결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경제정책을 만드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 개념을 고려해 사회 전체에 폭넓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정부가 대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세제 혜택을 받은 대기업이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면 이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공급망에 속한 중소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낙수효과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낙수효과 있다?없다?= 마침내 레이건 행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폭 인하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부유층은 소득세가 줄어든 데 따른 실질 소득 증가로 소비를 늘렸고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미국 경제에 회생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1960~1970년대 고도 성장기 때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대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경제정책을 폈습니다. 대기업 주도의 성장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중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정부는 온갖 정책적 혜택을 몰아주며 수출전선에서 싸우는 대기업을 응원했고 대기업의 몸집은 '연못 속 고래'처럼 커졌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이 이때 탄생했습니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낙수효과를 일으켰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국가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건 사실입니다.
낙수효과는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정책이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성장을 통해 부의 절대적인 크기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부유층의 소득 증대가 유발하는 소비와 투자가 경제 성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저소득층도 그 과실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물론 이런 논리에는 전제가 따릅니다. 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골고루 스며들게 방해요인이 없어야 합니다. 위 우화에서 여우를 동물 왕국을 잘 다스리라고 왕으로 발탁했지만, 사리사욕에 눈이 멀면 낙수효과는 물 건너가버립니다. 정부가 부유층에게 투자든 소비든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기껏 지원해줬는데, 그 돈을 그냥 저축한다든지 투기에 쏟는 바람에 예상과 달리 다른 계층에게 돈이 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죠.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낙수효과의 성공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때 성공 사례로 꼽혔던 레이거노믹스조차도 결국에는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부자만 살찌우고 중산층과 하위계층은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기준 미국의 상위 0.1%의 부가 하위 90%가 얻은 부와 맞먹는다고 보도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15년 낙수효과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며 폐기했습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면 이후 5년의 경제성장률은 0.08% 하락하고,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0.38% 증가했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양극화를 부르는 낙수효과= 이처럼 낙수효과는 이론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선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생산·수출 등 거시적인 지표는 분명 개선됐지만, 성장은 주로 대기업이나 부자에게만 집중되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은 소득이 감소하고 고용률도 낮아졌으며 가계부채 증가와 소비심리 악화라는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의 세금을 줄여주고 각종 규제를 철폐해줬더니 이런 혜택을 바탕으로 대기업들은 많은 이익을 남겼지만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사내유보금 형식으로 축적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가 급변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자하고 싶지 않았겠죠. 또한 투자를 줄이고 자신의 부를 저축하고 해외로 이전하거나 주주와 종업원들에게만 배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대기업에서부터 투자가 막히자 중소기업에게 낙수효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는 여전히 대기업에만 머물고 아래로 번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또 감세로 인해 정부의 재정 여력이 줄어 사회적 안전망이 약해지고 교육·보건·환경 등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따지고 보면 1997년 우리나라를 국가 부도 위기로 몰고 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일부 대기업의 경영 부실과 과도한 부채가 원인이 됐습니다.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돈이 제대로 유통되고 소비되며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대기업에 돈을 더 주는 것에만 그친다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만 됩니다. 낙수효과는 지원받은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 기업이 자기 앞가림만 해 돈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면 낙수효과는 허구가 됩니다.
낙수효과는 단지 경제적 통찰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평성과 분배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도 이어집니다. 사회 각 계층 간의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것은 안정적인 사회 구조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정책은 성장과 효율성 추구와 형평성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낙수효과 vs 분수효과= 낙수효과의 반대 개념인 분수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저소득층으로부터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부유층에 대한 세금은 늘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 지원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리면 소비 증가를 가져올 것이고, 소비가 증가되면 생산 투자로 이어지므로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하여 분수효과라고 부릅니다. 분수효과를 노린 정책으로는 최저임금제나 기본소득제, 지역상품권 지급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분수효과는 영국의 경제학자인 존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주장한 이론인데, 그는 불황을 극복하려면 정부 지출을 확대함과 동시에 저소득층 및 중산층에 부과되는 세금을 인하해 민간 소비를 자극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한계소비 성향이 더 높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세금 인하를 통해 가처분소득(개인 소득 중 소비와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 증가할 경우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의 소비 증가량이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저소득층 및 중산층에서 유발되는 소득 증대가 소비 및 생산 증대로 이어지고, 결국 다시 소득이 증대되는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는데, 이 모습이 마치 분수가 분출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최근 선진국들의 잇다른 낙수효과 정책 실패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수효과 역시 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므로 더 많은 세금을 걷거나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고 세금이 올라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정부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면 해외로 돈이나 일자리를 옮겨갈 가능성도 생깁니다. 결국 분수효과도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기 때문에 잘 조절해 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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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