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유럽과 미국의 낯 뜨거운 개 도살 역사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의 도시에는 ' 열등 '하고 '비정상적'인 개들 넘쳐나 애완견과 배회견 'stray dogs'을 구별해 배회견에 대한 가차 없는 도살 자행 런던과 파리에서는 '개 구금소'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개들을 목 졸라 교살해 식용 개 따로 있다는 보신탕 애호가 항변에 오늘날 구미 동물애호가 답 궁금

2024-08-12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며칠 있으면 말복이다. 예전 같으면 이른바 보신탕의 성수기다. 요즘에야 이런저런 제약으로 그 수요가 줄었지만 개들에게 의식이 있다면 한껏 몸을 사릴 계절이었다는 이야기다. 한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개들의 수난사는 비단 우리나라, 여름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개 식용을 비난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마구잡이로 개 도살이 이뤄졌으니 말이다. 인간과 동물 간의 불편한 흑역사를 다룬 『벌거벗은 동물사』(이종식 지음, 동아시아)를 보면 이에 관한 놀랄 만한 이야기가 그득하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의 도시에는 '열등'하고 '비정상적'인 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 무렵 '작다'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쁘티petit'에서 유래한 애완동물 '펫pet'에 속하는 애완견과 거리를 배회하는 '배회견stray dogs'의 구별이 이뤄졌고 배회견에 대한 가차없는 도살이 자행되었다고 한다.

런던, 파리, 뉴욕에서는 시민들이 배회견을 '박멸'해야 한다고 여겼고 공권력도 이에 적극 가담했다. 예를 들면 1811년 뉴욕 경찰서장 애브터 커티스는 그해 여름에만 2,610마리의 배회견을 죽였다. 19세기 중엽 런던과 파리에서는 개 구금소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개를 목 졸라 죽였는데 1840년대 파리에서는 매년 1만 2,000마리 이상을 교살했다.

개 도살 방법이 잔인하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1877년 뉴욕에서는 큰 케이지에 개들을 밀어넣고 크레인을 이용해 이를 강에, 말 그대로 '담가버리는' 방식으로 개들을 살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개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구금소 관계자들이 몽둥이로 쳐서 개의 다리를 부러뜨린 후 케이지에 넣곤 했는데 이를 '인도적 살처분'이라 자부했다나.

'인도적 살처분'은 갈수록 진화해서 영국의 대표적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벤저민 워드 리처드슨은 1884년 런던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리처드슨 도살실'을 만들었는데 이는 마취제인 클로로포름과 탄산가스를 이용해 최대 200마리의 개를 순식간-2분-에 죽이는 장치였다.

이런 런던의 '성공'사례에 어지간히 감명 깊었는지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배회견 살처분에 "과학의 진보"를 상징하는 "근대적 기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교류 감전의 위험성을 입증하기 위해 개 50마리, 코끼리 심지어 인간 사형수를 전기로 죽이는 실험을 설계하고 시연을 진행했다.

글쎄, 마취제나 전기를 이용해 개를 죽이는 것을 개 도살의 '과학화'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인도적 살처분'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한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이런 과거사를 들먹이거나, 애완견이 아니라 식용 개를 따로 키우는 것이란 보신탕 애호가들의 항변에 오늘날 구미의 동물애호가들이 뭐라 답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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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