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발지 전투' 예상 못한 이유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계속 밀려 본국까지 위협받은 나치 독일 총력 반격전 나서 대부분 전투 경험없는 청년으로 짜여진 20개 사단 투입됐지만 식량 등 군수품 부족 연합군,이런 데이터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만 히틀러의 '불안정 심리'는 간파 못해

2024-07-08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뜬금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번엔 '발지 전투' 이야기다. 흔히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전투로 1944년 6월 6일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든다. 조금 더 나아가면 1942년에서 1943년에 걸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정도. 그런데 1944년 12월 16일 시작해서 1945년 1월 27일 끝난 발지 전투도 빼놓을 수 없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계속 밀려 본국까지 위협받게 된 나치 독일이 총력을 다해 최후의 반격전을 펼친 것이 발지 전투로, 주 전장은 벨기에의 아르덴 숲이었으나 독일군 전선이 서쪽으로 튀어나왔기에 영어로 '돌출부'를 가리키는 '발지'가 이름에 붙은 것이다. 아무튼 이 전투는 패색이 짙어진 독일군이 연합군의 방어망을 뚫고 프랑스로 진격해 강화를 위한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었다.

독일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우세한 연합군의 공군력을 피하기 위해 안개가 자주 끼는 겨울을 공격 시기로 잡았고, 공수여단을 후방에 낙하시키거나 미군 복장을 한 특공대를 파견해 다국적군인 연합군을 교란시키는 등 안간힘을 썼다. 여기에 독일군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에 이 루트를 통해 프랑스로 전격 침투한 기억도 있고, 연합군의 특성상 각국 수뇌부의 협의를 거쳐 군을 재배치하기에는 수일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는 등 나름 승산을 계산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전투 개시 후 1주일여 만에 날씨가 풀리자 공중 폭격을 재개하는 등 연합군이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전투는 한 달 남짓 만에 양측 합해 17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독일군의 대패로 끝났다.

문제는 이 작전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한 시도였다는 점이다. 독일은 이 공세를 위해 약 20개 사단을 준비하고 티거 2 전차 등 첨단 무기로 무장했으나 대부분 전투경험이 없는 18세 이하 청년으로 구성됐고, 탄약·식량·연료 등 군수품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연합군은 이런 데이터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만 단 하나 히틀러의 심리를 고려하지 못했다. 역사적 사례에서 통찰력을 키울 23가지 교훈을 끌어낸 『불변의 법칙』(모건 하우절 지음, 서삼독)에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례로 이 이야기를 든다.

지은이는 당시 연합군 지휘부가 풍부한 정보와 최선의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딱 하나 히틀러가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불안정한 인물인지 고려하지 못해 발지 전투 초기에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고 설명한다. 히틀러는 부족한 전투용 연료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하고 묻는 부하 사령관들에게 "미군에게서 훔쳐 오면 되지 않느냐"고 했을 정도로 무모한 미치광이였다면서.

이런 비정량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세상살이는 고단해질 것이라는 게 경제 저널리스트인 지은이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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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