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3) 정주영은 왜 '소떼 방북' 기획했을까

소처럼 평화롭고 인내하고 부지런한 동물은 없다며 남북한이 함께 잘사는 세상 꿈꿔 어렸을때 동해 바닷물로 만든 두부 즐겨 '南의 콩과 北의 해수'로 두부만들자고 제안 현대의 수익이나 사업 이익보다 남북의 진정한 교류를 염원하는 의지 강하게 내비쳐

2024-05-28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소 떼와 함께 방북한 정 회장은 8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경제협력사업과 관련해 약 40명의 북측 인사들을 만났다. 이때 정 회장을 수행한 사람은 모두 14명이었다. 정순영, 세영, 상영 등 동생 3명과 정몽구, 몽헌 등 아들 2명, 그리고 이익치 사장과 김윤규 사장 등이었다.

정 회장은 북한에 도착해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1933년 18세 때 고향인 통천을 떠나 경성에 갔습니다. 1945년은 해방의 해지만, 동시에 분단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 후 본인은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1989년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했고, 이번에 500마리 소와 같이 판문점을 통해 북쪽에 왔습니다. 소 판 돈 70원을 생각하면서 본인이 남쪽 땅에서 길렀던 소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은 어렸을 때 동해의 바닷물로 만든 두부를 잘 먹었습니다. 남쪽의 콩과 북쪽의 해수로 만든 두부를 만들어 먹읍시다.

고향 송전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백사장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고향의 광경을 남쪽에 있는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소처럼 일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소처럼 평화롭고 인내하고 부지런한 동물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평화롭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라고 전해 들었다.

당시 수행했던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 회장의 말에서 현대의 수익이나 사업 이익보다는 남북의 진정한 교류를 염원하는 뜻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고향을 돕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4개월 후인 10월, 501마리의 소를 추가로 끌고 방북 길에 올랐다. 500마리가 아니고 501마리? 북한에 주기로 한 소가 1,000마리였고, 처음에 500마리를 줬으니 500마리만 추가로 주면 되는데.

여기에 또 정주영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1,000은 끝나는 수지만 1,001은 이어지는 수거든." 남북 협력이 끝나지 않고 쭉 이어지길 바라는 그의 소망이 이런 작은 부분에도 세심하게 반영돼 있었다. 거듭 느끼는 거지만, 정주영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번 기업가가 아니다. 그는 철학자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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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