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타이완은 어떻게 한족 영토가 됐나

명나라 말기 정치가 어지러워지면서 타이완 섬은 38년간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받아 1662년 남명의 장수가 네덜란드 몰아 내고 동녕국을 세워 반청복명(反淸復明)운동 강희제때 중국영토 최종 편입 …1684년 타이완에 1부3현의 '청나라 행정기구' 설치

2024-05-27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중국이 타이완 섬을 사실상 포위하는 육·해·공군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양안 관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데 따지고 보면 타이완 섬이 중국 영토에 최종적으로 편입된 것은 17세기 청나라 강희제 때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타이완 섬을 자기네 땅이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타이완 섬의 원주민은 고산족으로 한족과 달랐으며 굳이 분류하자면 필리핀계라고 하니 중국 땅이라 할 역사적 근거도 약한 편이다. 청나라의 전성시대를 연 강희제의 치세를 다룬 『강희 原典 수신제가』(둥예쥔 편저, 시아출판사)에는 타이완이 중국에 복속되는 전말이 상세히 나온다.

명나라 말기 정치가 부패하고 어지러워지면서 타이완 섬은 네덜란드의 손에 넘어가 38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런데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 때인 1662년 남명의 장수 정성공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동녕국을 세워 반청복명(反淸復明)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정성공은 그 인물 자체가 복합적이다. 일본에서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으며, 중국계 혈통이지만 중국 대륙에서 밀려나 대륙을 차지한 거대 정권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중화민국을 세운 장제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에 이어 동녕국을 이끈 아들 정경은 본토 수복은 포기하고 제후국가로서 청에 조공을 바칠 수는 있지만 류큐 왕국이나 조선처럼 변발을 하지 않고 복식도 바꿀 수 없다고 벼텼다. 이에 중국 사상 손꼽히는 명군인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는 '선회유 후토벌'을 원칙으로 타이완 포섭에 나선다.

강희 17년부터 19년(1678~1680)까지 회유정책을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경이 이끄는 반란군 13만여 명을 받아들이는 성과를 올렸다. 회유책의 핵심은 정경의 수하들이 두려워하는 청나라 장수를 이동시키고 투항한 장수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등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681년 정경이 병사하고 열두 살짜리 아들 정극상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내분의 조짐이 보이자 무력 정벌에 착수했다. 그해 6월 시랑(施瑯)을 제독으로 삼아 정예부대 2만 명이 230여 척의 군함으로 팽호도를 공격하게 했다. 이른바 '팽호대전'이다. 팽호도를 지키던 동녕국 장수 유국헌은 해마다 그때쯤이면 불어오던 태풍을 믿고 "우리는 그저 술이나 마시며 적들이 섬멸되는 것을 구경하면 되겠군"하고는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었던 태풍은 오지 않았고 유국헌 부대는 22일간이나 청군과 싸운 끝에 대패하고는 타이완 섬으로 패주하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강희제의 결단이다. 정극상 측은 필리핀으로라도 도망할 것을 논의했는데 강희제는 "저들이 국외로 도망간다면 훗날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며 전투 대신 정치 공세를 폈다. 결국 장수들의 잇따른 투항과 청의 회유에 굴복해 정극상은 군대를 이끌고 청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후 1684년 타이완에 1부3현의 청나라 지방행정기구가 설치되어 청나라의 동남 해안 방어의 요충지가 되는 한편 본토의 해안 지역 사람들이 속속 건너가면서 타이완은 유교문화가 도입되는 등 중화권에 편입되었다. 그러니 타이완의 역사는 만주족이 고산족의 땅을 한족(漢族)의 영토로 만들어준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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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