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2)소떼 실은 트럭 북한에 넘긴 사연

소 8마리씩 태운 트럭 130대 동원…판문점서 대기한 북측 운전자에게 운전대 넘겨 정 회장은 트럭까지 북한에 주려고 했지만 정부의 허락이 필요해 ' 30년 분납 ' 고안 북에 구제역 돌자 트럭이 돌아오면 방역문제 생겨 북한 보낸 트럭 처리 고민 사라져

2024-05-14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현대의 대북 사업은 결정권자인 정 회장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결단을 내렸기에 속도전이 가능했다. 북한 사회야말로 철저한 '톱다운 시스템'이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배포가 맞는 정 회장을 매우 좋아했다. 김정일의 "좋습니다" 한마디면 북한 군부의 반대도 소용없었다. 개성공단 역시 북한 군부에서는 결사반대했으나 정 회장과 김 위원장이 만나서 불과 4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북한에 보내진 소는 서산 간척지 70만 평 농장에서 방목해 온 소 중에서 건강한 소로 골랐다. 소를 운반하기 위한 트럭은 현대 자동차 전주공장에서 개조했다.

정주영과

트럭 한 대에 소 8마리씩 태웠다. 1차와 2차에 걸쳐 트럭 130대가 동원됐다. 트럭 10대당 1대씩 선도차도 있었다. 소를 태운 트럭을 서산에서부터 판문점까지 몰고 온 운전자들은 판문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측 운전자에게 트럭 채 인계했다.

정 회장의 세심함은 트럭에도 숨어있었다. 정 회장은 처음부터 아예 트럭까지 북한에 주고 오려고 했다.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예정에도 없던 사항이고, 한국 정부의 허락도 얻어야 했다. 소와 함께 차까지 주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다. 정 회장의 생각은 '30년 분납'이었다.

'소를 실은 트럭은 북측 운전자들이 몰고 판문점부터 강원도 통천까지 가야 한다. 그들에게 다시 그 트럭을 몰고 판문점까지 오라고 하는 건 무리다. 트럭 가격에 해당하는 돈이든, 물건이든 30년에 걸쳐 받겠다.'

그런데 정 회장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사건이 생겼다. 때마침 북한에 구제역이 돌고 있었다. 구제역은 소와 돼지에 옮기는 전염병이라 소를 싣고 북한에 갔던 트럭이 돌아오면 방역이 문제가 된다. 거꾸로 통일부에서 트럭을 갖고 오지 말라는 공문이 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것 아닐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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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