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1) 정주영의 '소 떼 방북'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1991년 베를린 장벽 붕괴이래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 북한 군부, 정 회장의 육로방북 요구에 군사 시설 노출과 북한 군인의 동요들어 강력 반대

2024-04-30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89년에 이은 두 번째 방북이었다. '남한의 기업가가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간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소위 말하는 '그림'도 좋았다. 남한의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으로 넘어가는 광경은 어떤 예술가의 퍼포먼스보다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정 회장의 예술적인 감성이 발휘된 아이디어다.

소 떼 방북의 장관은 TV를 통해 생중계됐으며 전 세계로 송출됐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래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맞다. 정주영의 소 떼 방북은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붕괴'와 맞먹는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이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 군부는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북한에 가겠다'는 정 회장의 요구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군사 시설이 노출될 수도 있었고, 북한 군인들의 동요도 우려해서였다. 정 회장의 육로 방북 의지가 워낙 강하니까 북측에서는 "군인들을 설득할 명분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됐다. "나는 아버지의 소 판 돈 70원을 훔쳐 서울로 갔다. 나의 사업은 이 원금 70원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원금을 천 배로 갚는 의미에서 1,000마리의 소를 선물로 가져가겠다. 그런데 소는 비행기나 배로 운반할 수 없다."

나중에 다시 거론하겠지만 현대가 대북 사업에서 주도권을 잡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개발 같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주영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스타일이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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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