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3) 살찐 암탉의 '불운'…투자와 투기의 차이

몸이 두배로 불면 알을 더 낳을 줄 알았지만 하루 한 알씩 낳던 알조차 못 낳아 욕심이 앞서면 리스크 커져 … 투자는 감성과 이성이 균형 이뤄 차분하고 얌전 투기는 감성이 강해 변덕스럽고 거칠어…시장은 투기 때문에 바람 잘 날 없어 비트코인에 거품이 끼었는지 알 수 없지만,거품이 꺼진다면 개인 피해 불 보듯

2024-04-18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어느 농가의 주인이 암탉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암탉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통통하고 건강한 암탉은 날마다 신선한 달걀을 하나씩 나아 주었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주인은 그것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달걀을 모았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다른 물건을 사기도 했죠.

암탉이 낳는 달걀은 크고 맛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비싼 값에 팔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은 문득 욕심이 생겼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하루에 한 번 밖에 낳지 않으니까, 달걀 반찬을 하루 한 번 밖에 먹을 수 없어. 그리고 며칠 동안 모아도 겨우 시장에 내다 팔 정도 밖에 안 되잖아. 암탉이 알을 좀 더 많이 낳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먹이를 두 배로 주면 달걀도 두 배로 낳을 거야."

주인은 암탉의 먹이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암탉은 금방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몸이 불어났으니까 알도 많이 낳겠지." 주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암탉이 여러 개 알을 낳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몸이 불어난 암탉은 비만증에 걸려 하루에 하나씩 낳던 알조차 낳지 않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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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주인의 욕심 때문에 암탉은 비만증에 걸려 하루 하나씩 낳던 알조차 낳지 않게 됐습니다.

소탐대실이네요. 이처럼 욕심이 앞서면 리스크가 커집니다. 경제 행위라는 게 다 그렇습니다.

요즘 암호화폐를 놓고 투자냐 투기냐의 논란이 뜨겁습니다. 투기와 투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투자는 뭔가 정의롭고 좋은 것이고, 투기란 떳떳하지 못하고 나쁜 것이란 느낌이 듭니다.

투기의 사전적 정의는 시세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매매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해 물건을 사고 단기간에 이득을 남기고 파는 것입니다. 실제 그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실수요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시장은 실수요만으로 굴러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수요만 있으면 사려는 사람이 너무 적어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합니다. 그래서 밉지만 투기꾼의 도움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은? =따지고 보면 투자와 투기는 한 혈통입니다. '투'자 돌림이고 끝 자만 다를 뿐이죠. 둘의 고향은 시장입니다. 같은 곳에서 같이 놀면서 자랐지만 성격은 판이합니다. 투자는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뤄 차분하고 얌전한 편입니다. 그러나 투기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강해 변덕스럽고 때로는 거칩니다. 그래서 시장은 이 투기 때문에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시장에서 균형은 중요합니다. 시장이 이상하게 움직이다가도 결국은 사는 쪽과 파는 쪽이 팽팽한 균형점으로 돌아오도록 돼 있습니다. 만약 균형점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경우 공급자는 많이 공급하고 소비자는 적게 소비합니다. 이 때문에 물건은 넘쳐나는데, 살 사람이 부족해 결국 공급자는 다시 가격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균형점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균형점보다 가격이 낮으면 공급자는 덜 생산하고 소비자는 더 사려고 하니 가격은 다시 올라갑니다. 이처럼 낮은 가격에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은 자연스런 투자입니다.

투기는 그 반대입니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소비합니다. 그래서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이것이 거품이고, 거품은 언젠가는 '펑'하고 터집니다. 그러나 거품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터지고 나서야 '아, 그게 거품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인식할 뿐입니다. 만약 가격이 떨어지면? 투기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동산이 꼭 그렇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올라가면 사람들은 부동산을 사려고 합니다. 부동산 가격은 다시 올라갑니다. 그러면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내놓습니다. 시장엔 매물이 넘쳐나는데, 사려는 사람은 꼬리를 감춥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린답시고 불쏘시개로 투기 수요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사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이것이 투기의 정체입니다.

투자와 투기는 사람들의 '기대'를 먹고 자랍니다. 가격이 오르리라는 기대가 없으면 투자나 투기나 꿈쩍도 안 합니다. 투자는 균형 가격보다 더 떨어졌으니까, 적어도 그 가격을 회복할 때까지 오르리라는 기대 때문에 생깁니다. 시장이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문제가 안 되죠. 하지만 투기는 지금까지 올랐으니 앞으로도 오르라는 기대가 부추깁니다. 투기는 시장 과열을 빚고 경우에 따라선 참여자 모두를 루저로 만드는 문제아입니다.

투기가 자라는 토양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먼저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합니다. 또 시중에 돈이 넉넉하게 풀려 있어야 합니다. 저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투기는 언제든지 준동할 태세를 갖춥니다.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어디로인가 돈을 굴리고 싶어 합니다. 그 대상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암호화폐든 무엇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럴 듯한 미래 전망이나 다른 사람의 성공담 같은 투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가 단 며칠 사이 폭등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큰 돈을 벌어 월급쟁이 때려쳤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나옵니다. 누가 적게 일하면서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까요? 경기 전망은 장밋빛이고 실탄도 충분합니다. 이젠 탐욕에 불을 댕기기만 하면 됩니다.

◇탐욕에 흔들리는 투심= 그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럴듯하게 들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껏 망설이던 사람들도 '사자' 대열에 올라탑니다. 혹시 막차 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나만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면 시장엔 더 많은 돈이 생기고 가격은 폭등합니다.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그럴 듯하게 포장됩니다. 시장은 이제 '폭탄 돌리기' 게임에 접어듭니다. 폭탄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나머지 제때 팔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거래는 계속되고 폭탄은 마지막 투자자의 손에서 터지고 말죠. 자기 과신, 헛된 희망, 욕심 등이 어우러지며 시장은 대재앙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 대재앙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개인들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1929년 대공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장이 파국을 맞을 때마다 희생양이 된 것은 언제나 개인들이었습니다. 최근 광풍이 몰아친 비트코인도 거품이 끼었는지 알 수 없지만, 거품이 꺼진다면 그 피해는 개인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쓸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꿈틀대는 증시에서도 한 순간에 큰 돈을 벌려다 있는 재산마저 탈탈 털리는 투자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시장은 투기의 유혹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입니다.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다간 유혹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투기에 의해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 중 하나는 장기 투자입니다. 과거 20년 간 코스피 지수 궤적을 그려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0년대 벤처 버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험한 세월을 겪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조금씩 고점을 경신하며 상승했습니다. 굵직한 악재가 터져도 최소 3년만 지나면 원래 주가 수준을 회복하며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과거 지수 움직임이 미래에도 되풀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주식은 심리게임이고 주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군중심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장기 투자가 답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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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