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0) 금강산 관광 '마라톤 협상'
대남 공작책임자인 김용순 서기와 라인이 있는 전 아사히 신문사 서울지국장에 가교역 부탁 정 회장의 낙점받은 김윤규 사장이 실무회담 주도…정몽헌 회장이 천거한 다른 사람은 일축 수십 차례의 회의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체력전…김윤규 사장의 '끈기와 뚝심' 돋보여
정주영 회장은 대북 사업 재개가 자신의 마지막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정 회장은 94년 전쟁 위기를 겪으면서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이 터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금강산 관광이야말로 전쟁 억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현대가 대북 사업 재개를 위해 도움을 청했던 사람이 고바야시 교수였다. 일본 아사히 신문사 서울지국장이었던 고바야시 기자는 퇴직 후 규슈 국제대 교수로 있었다. 고바야시가 북한의 대남 공작책임자인 김용순 서기와 라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SOS를 친 것이다.
고바야시는 아사히 서울지국장 때 만났던 정주영 회장을 기억했다. 고바야시가 "설악산은 매우 아름다운 산"이라고 하자 정 회장이 유창한 일본어로 "설악산은 금강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내가 볼 때는 금강산의 찌꺼기로 만든 산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98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현대와 북측의 첫 면담이 이뤄졌다. 정몽헌 회장이 금강산관광 및 개발계획을 설명했고, 북측에서는 송호경 아세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비료, 비닐, 디젤유와 기타 경제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3월에 2차 면담이 이뤄졌고, 이때 현대에서 북측에 옥수수 5만 톤을 무상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후 실무회담은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주도했다. 김윤규 사장이 실무 책임자가 된 것은 정주영 회장의 지시였다. 처음에 정몽헌 회장은 다른 사장을 추천했으나 정 회장이 "김윤규에게 맡겨"라고 일축했다.
북한과의 협상은 예측 불가능하다. 북측의 실무진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일일이 윗선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한다. 실무회담을 진행한 현대 담당자들이 "담벼락과 얘기하는 줄 알았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수십 차례의 회의는 의례 새벽 2~3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8시에 재개됐다. 일종의 체력 싸움이고, 기 싸움이었다. 지칠 만도 했으나 김윤규 사장은 끈질기게 버텼다.
현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념과 끈기의 싸움에서 김윤규 사장을 이길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김윤규 사장이 아니었으면 도중에 협상이 결렬됐을 것이라고 했다.
정주영 회장의 혜안이 여기서도 발휘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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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