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소시오패스의 민낯

자기 욕심을 채우려 온갖 못된 짓 …규칙 파괴와 뻔뻔함은 최근 기시감 2014년 미국 화학공장서 독성 물질이 누출됐다는 뉴스는 '조작 트롤링'

2024-04-15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표현의 자유와 진리 수호의 조화를 모색한, 이색적이면서도 진지한 『지식의 헌법』(조너선 라우시 지음, 에코리브르)란 책이 있다. 한때 기자로 활동했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썼는데 여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2014년 9월 11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센터빌에 있는 컬럼비언 케미컬즈란 화학공장에서 독성 물질이 누출됐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소셜 미디어로 번지기 시작한 이 뉴스를 인근 거주자들은 경고 문자를 받았고, 현지 언론인들은 트윗을 받았으며 유튜브에는 '뉴스 전문방송 CNN'의 영상으로 도배가 됐다.

존 메릿이란 트위터는 "수 마일 밖에서 들릴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트윗을 날렸고, 어떤 이는 공장을 에워싼 불길 이미지를 전송했다. 이 뉴스는 갈수록 확대돼 이 재난 사고와 관련해, 유튜브 동영상 링크까지 갖춘 위키피디아 항목까지 만들어졌다. 그럴 만했다. 인도의 보팔 참사를 연상케 하는, 얼마나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을지 모르는 독성 가스 누출 사고라면 엄청난 대형 사고이니 그렇지 않았겠는가.

한데 이 뉴스는 조작된 것이었다. 문자, 트윗, 동영상까지 모두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를 전한 것이었다. 해당 공장의 모기업인 벌라 카본은 당황한 가운데 "저희 시설에서는 이런 독성 가스 방출, 폭발, 그 밖의 다른 어떤 사고도 없었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문제는 처음 이 소식을 온라인에 퍼뜨린 문자 메시지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세인트메리 행정지구의 국토안보국장 듀발 아서는 이를 "슬프고 병적인 유머 감각을 가진 누군가의 장난"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지은이는 이것이 트롤링(trolling)의 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트롤링이란 게임문화에서 파생된 용어로 악의적이거나 주제와 무관한 온라인 게시글을 고의로 올려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어 지은이는 논의를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 일화를 끌어들여 트롤링을 하는 트롤러를 소시오패스의 일종으로 연결한다. 소시오패스는 사회규범이 자기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제재를 받을 위험이 없다면 언제든 거리낌 없이 노골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몸을 안 보이게 해주는 반지를 얻은 양치기 기게스가 자기 욕심을 채우려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소시오패스라는 설명이다. 또한 소시오패스는 때때로 외부에서 부과된 법과 제약을 따르기도 하지만 이는 그렇게 하는 편이 자기에게 이익을 줄 때뿐이라고 한다. 이런 규칙 파괴와 뻔뻔함은 최근 어디에서 본 듯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센터빌 사건에는 반전이 있긴 하다. 그 거짓 뉴스가 이름 모를 트롤러의 '작품'이 아니라 상트페테부르크에 있는 악명 높은 러시아 댓글 부대 인터넷조사국(IRA)의 허위 정보 실험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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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