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경국지색에 흔들린 리더십
집권 초기엔 개혁과 선정으로 태평천하를 이룩했던 당 현종, 양귀비 만나 국운 쇠락 폭정에 흥분한 장졸들,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의 전횡'에 반기들자 양귀비에 자결령
빼어난 미인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다. 임금이 혹해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로 예쁘다니 중국인들의 과장도 어지간하다 싶지만 이게 실제로 있었다.
중국 역사상 경국지색을 꼽자면 빠지지 않는 인물 '양귀비'가 그랬다.
본명이 양옥환인 양귀비가 어느 정도 미인이었느냐 하면 당나라 6대 황제 현종이 자신의 18번째 아들의 아내, 그러니까 며느리였던 양귀비를 취하고 대신 새로운 여자와 혼인시켰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 양귀비로 인해 당나라는 내리막을 걷게 된다.
현종이 처음부터 암군(暗君)이었던 것은 아니다. 집권 초기엔 개혁과 선정으로, 중국사에서 '개원지치(開元之治)'라 불리는 태평천하를 이룩했던 영명한 군주였다. 그랬던 그가 노년에 30여 년 아래인 양귀비와 사랑에 빠지면서 나라를 말아먹은 것이었다. 양귀비의 친척 오빠인 양국충을 중용했는데 그는 두 번 출병에 20만 군인을 잃을 정도로 용렬한 간신이었다. 한데 권세를 잡더니만 측근들로 관직을 채우고 국정을 오로지 했고, 결국 그와 불화했던 변방의 장수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현종은 쓰촨으로 파천하는 등 나라가 흔들렸다.
이와 관련해 중국사에서 통치술을 뽑아 정리한 『제압의 기술』(마수취안 지음, 김영사)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안녹산의 거병(擧兵) 명분이 양국충 토벌이었기에 조정 대신들이 양국충을 먼저 죽인 다음 안녹산을 토벌해야 한다고 상소했다. 당초 현종은 양국충을 두둔하면서 중용했지만 서울을 버리고 도주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횡포를 부리던 양국충은 결국 휘하 병사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양국충과 그의 가족을 살해한 병사들은 계속해서 현종의 처소를 포위한 뒤 난리의 원흉 격인 양귀비를 죽이라는 조서를 내리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되도록 양귀비에 대한 총애를 버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귀비는 궁에만 있어 죄가 없는데 어떻게 처단할 수 있느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만 해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감 고력사가 "비록 귀비가 죄가 없다 해도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폐하가 위태롭습니다. 그녀를 죽여야만 장졸들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다급하게 고했다.
그제서야 현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짐이 간사한 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귀비마저 억울하게 죽게 되었으니,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탄식했다. 그러고는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했고, 장졸들은 양귀비의 죽음을 보고서야 안녹산 군을 향해 창끝을 돌렸다.
이 이야기는 책 내용 중에 '마음을 제어하다(御心)' 편에 실렸는데 지은이는 이를 두고 "민중의 원한을 쌓이게 해서는 안 되며, 악을 징벌할 때는 일시적 안일을 위해 방임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훈을 정리했다. 역사는 리더십의 거울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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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