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38) "압구정동 땅을 사라"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돌아온 이익치 비서에 아파트 판 돈으로 사라고 '명령' 현장에 가보니 허허벌판이라 땅 매입을 주저 했다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 '아파트 반값'이 현실성 없다는 지적에 정주영 회장은"나는 거짓말은 안 해"

2023-12-13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정 회장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을 잘 챙겼다. 다 부자로 만들었다. 현대건설 시절 울산에 직원용 아파트를 먼저 지었다. '집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직원들이 집 한 채씩은 있어야 한다'라는 지론이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지을 때도 자투리땅에 직원용 현대 맨션을 지었다. 직원들에게 신청을 받아 저가로 분양했다.

70년대 초,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이익치 비서가 휴가를 받아 귀국 인사차 들렀을 때였다. "이 비서, 사우디 갈 때 서울 집 팔았지? 그 집 판 돈 은행에 맡겼나? 당장 그 돈 찾아서 압구정동 땅을 사게."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압구정동에 가보니 완전 허허벌판이었다. 왜 이 땅을 사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회장의 말이라고 해도 거의 전 재산을 거기에 투자할 자신이 없었다. 후환이 두려워 아주 조금 생색내기용으로 샀다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유한 강남땅은 대부분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때 사들인 것이다.

그러니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국민이 집 한 채씩 갖도록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 공약이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대표작으로 현대건설이 짓는 현대아파트는 최고의 아파트였고, 부의 상징이었다. 그 현대건설의 최고 수장이 반값 아파트를 약속했으니 서민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했다.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중산층 서민이 많이 사는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대도시의 열기는 뜨거웠다. 여의도 유세장에는 20여 만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김대중 후보의 텃밭인 광주에서도 30만 명이 몰려들었다. 이 광주 30만 명에 정주영 회장이 흥분했고, 당선을 확신한 계기가 됐다.

그러면 실제로 반값 아파트는 실현 가능한 공약이었을까. 남들처럼 표를 얻기 위한 공약(空約)은 아니었을까. 당시 정 회장과 함께 정책을 세우고, 선거를 도왔던 측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절대로 헛소리가 아니었다.

정 회장의 입에서 처음 "아파트 반값"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의아해하던 임원은 있었다. 당시 분양가의 반값에 분양하면 건설사들이 남는 게 없을 텐데 현대건설이라도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정 회장 특유의 "반값 아파트가 왜 안 돼?"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거짓말은 안 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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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