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28)'청와대'와 맞선 뚝심

84년 LA 올림픽 '종합 10위'라는 성과 내 국민적 환대 받았으나 청와대 미운털 박혀 청와대 의중과 달리 '김성집 선수단장' 카드 공개하고 '박종규 IOC위원 추천' 어깃장

2023-10-04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1년만 하겠다던 정 회장의 대한체육회장 임기는 LA 올림픽 등으로 계속 늘어났다. 한국은 LA 올림픽에서 금 6, 은 6, 동 7개를 얻어 당당히 종합 10위에 이름을 올리며 차기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을 세웠다.

84년 8월 12일, LA 올림픽이 폐막했다. 예상보다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귀국한 선수단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0월 1일, 집에 있던 정 회장에게 체육부 차관의 전화가 왔다. "오늘부로 대한체육회장 해임입니다."

시킬 때도 제멋대로, 해임도 제멋대로였다. 정 회장은 기분이 나빴으나 사실 이런 일을 예상했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김성집

첫 번째는 LA 올림픽 선수단장 선정 건이었다. 선수단장 선정은 체육회장 권한이었다. (정확하게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의 권한인데 대한체육회장이 KOC 위원장을 겸임했다) 청와대는 노골적으로 특정인을 단장으로 선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여길 때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그럴 뜻이 없었다. 당황한 청와대가 그러면 복수 추천을 해서 올리라고 했으나 그것마저 거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적임자로 생각한 김성집 씨를 신문에 먼저 발표 해버렸다. 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김성집 씨는 당시 태릉 선수촌장이었다. 선수촌장으로서 대표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고, 선수들에게 신임도 얻고 있는 김 촌장이 선수단장 적임자라고 정 회장은 판단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의중을 정면으로 치받아버린 건 정 회장 아니면 할 수 없는 처리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권유(사실상 강요)를 거절하면서 신문에 먼저 발표까지 했다는 건 정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청와대라 하더라도 이미 언론에 발표된 내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승인은 했으나 미운털이 박힌 것은 당연했다. 두 번째는 IOC 위원 추천 건이었다. 이때도 청와대와 부딪쳤다. 청와대의 뜻은 박종규 씨였다. 대통령 경호실장, 대한사격연맹 회장, 대한체육회장 출신이니 전혀 엉뚱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88 서울올림픽도 치러야 하는데 체육계 인사로서 국제 외교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박종규 씨는 제 염두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박종규 씨를 IOC 위원으로 추천해버렸다. 두 번이나 정 회장에게 끌려갈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렇게 '체육인 정주영'의 공식적인 활동은 끝났다. 하지만, 그가 올림픽과 한국 체육계에 남긴 뚜렷한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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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