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25) 정 회장의 '射頭' 설득전

양궁을 떼내기위해 궁도협회 우두머리에 큰절하며 '올림픽 메달 작전' 설명 양궁協 초대 회장 추대됐으나 사양 … '정몽구 회장 12년간' 세계최강 굳혀

2023-09-06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정 회장은 직원에게 맡겨놓고 팔짱 끼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직접 나섰다. 궁도에서는 우두머리를 사두(射頭)라 부른다. 궁도협회 사두는 80세가 넘은 노인이었다. 정 회장은 북악산에 있는 궁도 연습장을 찾아가 사두에게 큰절을 했다. "활은 국궁이나 양궁이나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올림픽에 국궁은 없습니다.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양궁을 분리해서 따로 훈련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궁도협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 회장은 갈 때마다 돈 봉투를 준비해서 들고 갔다. 한 달 동안 공을 들이니 조금씩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다.

궁도협회

결국은 돈 문제였다. 궁도협회 사람들은 양궁이 독립해서 나가면 예산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다. 정 회장은 "궁도협회 예산은 깎지 않고 그대로 다 드리겠다"며 설득했다.

2월에 체육회 대의원 총회가 열렸다. 정 회장의 의지대로 '체육회가 가맹 경기단체를 지휘 감독할 수 있다'라고 의결함으로써 양궁을 궁도협회에서 분리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드디어 83년 3월 4일, 양궁협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체육회 부 회장인 김집(후에 체육부 장관) 씨가 사회를 봤고, 대의원들은 그동안 양궁 발전에 강한 의지를 보여준 정주영 회장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정 회장은 "초대 회장으로 추대해준 것은 고맙지만 체육회장이 양궁협회장까지 겸임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며 사양했다. 결국 정 회장의 6남 정몽준 회장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 회장의 뚝심으로 양궁협회가 발족했고, 결국 LA 올림픽에서 서향순이 여자 개인 금메달, 김진호가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뤄냈다. 김진호의 금메달을 예상했으나 의외의 결과였다.

85년부터 2남 정몽구 회장이 양궁협회장을 맡아 97년까지 12년 동안 이끌면서 대한민국 양궁은 세계 최강 자리를 굳혔다. 2005년부터는 손자인 정의선 회장이 양궁협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대한민국 양궁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 중 4개를 휩쓸었고, 곧이어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5개 전 종목을 석권했다. 양궁에 대한 정 회장의 애착이 3대에 걸쳐 이어지며 양궁 강국을 유지해 온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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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