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美은행업계의 '반듯한 전설'
금융사고 잦은 국내뉴스 속 BOA 창업자 지아니니의 '시민금융' 눈길 가난한 학생 계좌 열어주고 암소와 의류, 냉장고 담보로 돈도 빌려줘 부자비위 맞추느라 서민을 망각하면 '다시 돌아 온다'는 이임사 유명
"여러분 중 누구라도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서민들을 망각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나는 다시 돌아올 겁니다."
이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창업자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가 현직을 떠나면서 임원들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지점 수로 미국 최대, 평균 잔액으로 미국 2위인 이 은행의 전신은 뱅크 오브 이탈리아였는데, 1904년 친구와 함께 이를 세운 인물이 지아니니였다. 서민 금융을 지향한 그의 독특한 경영기법은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지음, 김영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당시만 해도 은행은 "침대 밑에 더이상 돈을 숨겨둘 수 없을 만큼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비밀 클럽이었다. 지아니니는 달랐다. 그는 "소시민이야말로 은행 최고의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거물급 인사는 은행에서 뭔가 빼낼 수 있는 경우에만 함께할 뿐입니다"라고 믿었다.
다른 은행이 고객들을 접객실이나 컨트리클럽으로 불러들일 때 그의 은행은 거리로 나갔다. 다른 데서 대접받지 못하는 배관공과 트럭 운전사, 토마토 출하업자 등 소액대출자들을 상대했고, 정상 영업시간에 찾아올 수 없는 소시민들을 위해 저녁은 물론 때로는 일요일에도 은행 문을 열어뒀다.
당시 은행들은 연 20%라는 높은 대출이자율로 '쭉정이 고객'들을 걸러냈다. 하지만 지아니니는 누구나 저렴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를 찾아다니는 이들일수록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독특한 주장을 내세워 대출이자율을 6%로 낮췄다.
대출 자격의 역발상과 함께 문을 활짝 열라는 그의 경영 방침은 학생예금과 담보물의 차별 없애기로 이어졌다. 학생 4만 명에게 예금 계좌를 만들어주었는데 막대한 운영비에 비해 수익은 작았지만 은행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는 효과를 냈다. 거대한 부동산이나 담보로 잡는 다른 은행들과 달리 뱅크 오브 이탈리아는 암소와 의류, 자동차, 농작물 심지어 유성영화와 주택 소유주들의 냉장고까지 담보물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신기법'을 선보였다.
1920년대 후반 지아니니는 민족적 색깔을 띤 은행명을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바꿨는데 이후 대공황의 와중에서 수익 지상주의를 좇는 월스트리트 출신 금융업자들과 경영권 다툼을 벌여야 했다. 지아니니는 평범한 소시민들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연안을 따라 유세를 돈 끝에 은행 지분의 60% 이상을 끌어모아 주도권을 지켜냈다. 한편으로는 지아니니 재단을 만들어 직원들의 교육 장학금과 의료 연구에 쓰도록 50만 달러를 출연하기도 했다.
"정의나 원칙과의 타협은 불가능하다"며 평범한 시민들의 가능성을 믿은 지아니니의 승리였다. 지아니니는 말년에 자신이 백만장자가 될 '위험'에 처했다며 그런 사악한 고공 행진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치부를 위해 수십억 원 횡령 범죄가 벌어지곤 하는 은행 관련 뉴스를 보다가 떠올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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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