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⑦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의 '3분법'

인류 역사는 모든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벌인 '갈등과 싸움'으로 점철 당나귀는 순진하게 사냥한 먹잇감을 균등하게 나누려다 '권력자' 사자한테 희생 당하는 불운 노력의 보상 받지 못하고,참여자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 조직은 활력이 떨어져 성과 못내 칭기스칸, 약탈한 물건을 각자의 ' 역할과 전공 ' 따라 공정 분배하고 전사자 유족에도 나눠줘

2023-07-27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팀을 이뤄 사냥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여유가 꾀를 내 유인하고 당나귀가 사냥감을 몰아가면 사자가 덮쳐 해결하는 방식이었죠. 매우 적절한 역할 분담이어서인지 사냥이 수월했고 많은 먹잇감을 얻었습니다.

사자는 수고많았다며 당나귀에게 사냥에 성공한 먹잇감을 나눠가질 수 있게 분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나귀는 셋이서 사냥을 했으니 먹잇감을 공평하게 3등분해서 똑같이 나눴습니다.

"사자야 오늘 사냥한 짐승들을 셋으로 나눴어. 각자 골라가지면 돼." 그러나 당나귀가 나눈 몫을 본 사자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게 공평하게 나눈 거라고? 짐승을 많이 잡은 게 내 덕이지 네 덕인줄 알았냐?" 그렇게 말하면서 당나귀를 덮쳐 먹어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사자는 여우를 쳐다보며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여간 조금 잘해주면 제 분수를 모른다니까. 이번에는 여우, 네가 사냥한 짐승들을 나눠봐라." 여우는 자기 몫으로 조금만 떠어놓은 다음 나머지를 한군데에 잔뜩 쌓아뒀습니다.

"사자님, 다 나눴어요.이게 제 것이고, 저것이 사자님 몫입니다." "오 대단히 지혜롭게 나눴구나. 이렇게 분배하는 걸 누가 가르쳐 주더냐?"

여우는 사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당나귀가 당한 불행을 보면서 지혜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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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게 마련이고, 열매도 그에 따라 나눠야 당사자들이 불만이 없겠죠. 그런데 당나귀는 미련하게 똑같이 나누려다 희생됐습니다. 여우는 능력에 따른 분배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를 놓고 벌인 갈등과 싸움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공정성의 핵심은 한정된 자원을 누구도 불만이 없게 나누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은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이를 분배해 소비하는 활동인 분배에 관한 정확한 개념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배는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이해까지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특히 소득 불평등 같은 경제적 분배가 잘못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가계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가 불황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워집니다. 자녀 출산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줄어 경제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되며 비생산적인 정부 지출도 늘어나 국가 재정을 좀먹습니다. 계층 간 갈등이 커지면서 범죄도 많아지고 사회도 불안정해집니다.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정분배'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균등 분배의 허실=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배의 원칙은 '균등'입니다. 넉넉지 않은 재원을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게 되면 차별 문제가 발생합니다. 회사의 어느 부서가 높은 실적을 올려 회식비 50만원이 나왔는데, 기여도가 작은 직원을 회식에 불참시킬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기여도가 큰 직원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독차지하면 안 되겠죠. 부서장은 화합을 위해 모든 부서원을 참석시키고 마음껏 하루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분배의 기준으로 마땅한 게 없을 경우 균등은 대안이 됩니다. 가장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균등 분배는 회식비나 음식값 같은 사소한 사안에 대해선 효과가 있겠지만 민감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솝 우화의 당나귀는 순진하게 사냥한 먹잇감을 균등하게 나누려다 권력자 사자한테 희생당했습니다. 사실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먹잇감도 생겼으니 당나귀의 방식대로 균등 분배가 답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성과에 대한 참여자들 개별적인 기여도나 분배 대상에 대한 필요성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균등 배분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노력한 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참여자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성과도 내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공동생산·공동분배의 공산주의 경제 시스템을 적용한 북한 사회가 살아있는 반면 교사입니다.

다시 이솝우화. 사자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나귀와 여우가 맡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먹잇감을 얻는 데 공을 세운 건 맞지만 사자는 이들과 다른 대접을 받기를 원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사자는 덩치가 당나귀와 여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큽니다.

따라서 이들보다는 10배, 20배는 먹어야 합니다. 이런 사자에게 균등 배분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여우가 사자의 입장을 헤아렸는지는 몰라도 사자의 몫을 크게 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우는 앞으로 사자와 사냥 게임을 다시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자는 배분 방식이 마음에 안든다고 친구인 당나귀를 죽였고, 먹잇감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앞으로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사냥에 나서야 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칭기스칸의 공정분배=이 이솝우화와 비슷한 사건이 중세 몽골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몽골은 유럽과 아시아를 제패한 초강대국이었습니다만 12세기에는 인구가 200만명도 안 되는 가난한 부족국가였죠. 당시 몽골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약탈이 성행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귀족만 약탈품을 차지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부족끼리 전쟁이 벌어지면 적을 섬멸하기 보다 약탈에 더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 패한 부족은 물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면 남을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복수전에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적의 섬멸보다 약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분배구조는 약탈과 복수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었고, 몽골의 통일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칭기스칸입니다. 칭기스칸은 이런 문제점을 간파하고 분배의 규칙에 수술을 가했습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개인적인 약탈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큰 벌을 내렸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약탈한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각자의 역할과 전공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했습니다. 심지어 이전의 전쟁에서 숨진 전사의 유족들에게까지 전리품이 배분되었습니다.

규칙 하나를 바꿨을 뿐 인데도 칭기스칸의 군대는 몽골의 최강자로 거듭났습니다. 군사들은 공을 세운 대로 전리품을 받을 수 있어 약탈보다 적을 섬멸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전사한 군인의 유족에게도 전리품을 나눠준다는 믿음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공정분배 전략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력한 군대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풍요로운 분배를 가져오는 선순환을 일으켜 몽골이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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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