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⑰ 전두환 정권의 올림픽 SOS

문교부 장관이 관계장관 회의에서 정주영 회장에게 유치 위원장을 맡기자고 제안 일언반구 상의 없이 체육국장이 '사령장' 들고 정 회장의 사무실 찾아와 머리 숙여 현대양행 뺏겨 전두환 싫어 했지만 서울유치 결심해 동분서주 끝 나고야에 역전승

2023-07-12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81년 5월 어느 날, 문교부 체육국장이 당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올림픽 유치 민간 추진위원장 사령장'이 들려있었다.

정 회장과는 사전에 일언반구 어떤 의논도 없었다. 정 회장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역정을 냈으나 체육국장은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

어찌 된 사연인지 알아보니 초조해진 이규호 문교부 장관이 관계 장관 회의에서 유치위원장을 정 회장에게 맡기자는 제안을 했다고 했다. '강인한 추진력과 기지로 현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정주영 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으나 정 회장은 '망신을 당하더라도 정부가 아니라 정주영 네가 당해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 회장은 전두환 정권을 싫어했다. 기업 통폐합이라는 명분 아래 현대양행을 한 푼도 못 받고 통째로 뺏긴 정 회장이 전두환 정권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 정권이 추진하는 올림픽 유치였다. 더구나 자신에게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고 덤터기를 씌웠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주영의 돌파력이 발휘된다. 부정을 긍정으로, 안 되는 걸 되도록 만드는 능력이 그의 특기였다. 올림픽 유치? 한 번 해보자. 모든 일은 인간이 계획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적자가 나도록 계획하면 적자가 나고,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나도록 계획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유치 못 하는 게 병신이지 유치만 하면 흑자는 얼마든지 낼 수 있어."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경기장이나 숙소는 민간 시설을 동원하고, 아파트를 지어서 선수촌과 기자촌으로 쓴 뒤 나중에 팔면 되겠다는 큰 그림이 있었다.

그해 IOC 총회는 9월이었다.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정주영의 저돌적인 '속도전'이 빛을 발했다. 정 회장은 먼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안기부의 적극 협조를 다짐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진두지휘하면서 전경련 산하 기업에 각각 역할을 분담했다. 정 회장은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 IOC 위원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했다. 현대그룹의 조직과 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바덴바덴 총회에서 52 대 2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일본 나고야를 따돌리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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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