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CEO 스토리] 신재원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의 '겸손 경영학'
리더가 가장 많이 안다고 착각하면 경청하지 않아 조직이 커질수록 와해위험 더 커져 NASA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지내면서 '일의 가치' 목격…"연봉보다 자부심이 더 중요" UAM 등 '미래의 항공교통' 총괄…정책 결정권자 순환근무, 전문성 가로 막아 아쉬움
"겸손해야 남의 말을 경청하고, 사소한 것까지 직접 챙기는 이른바 마이크로 매니저형 리더가 될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재원 현대자동차그룹 사장(AAM본부장)은 "겸손하지 않은 리더는 무엇보다 자기 생각만으로 조직을 이끌어 결국 몸담은 조직을 해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어느 조직이든 인재 양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겸손하지 않은 리더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니까 남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좋은 사람을 뽑으려 들지도 않죠. 지위가 높아질수록 이끌어야 할 조직은 커지고 구성원도 많아지는데 남의 말을 안 들으면 조직이 와해될 수밖에 없어요."
신 사장이 맡고 있는 AAM(Advanced Air Mobility)은 미래의 항공교통을 가리킨다. 도심의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심 항공 교통(UAM : Urban Air Mobility)과 지역 간 항공 이동인 RAM(Regional Air Mobility)을 포괄하는 것으로, 친환경 기체 개발 업무도 담당한다.
항공업계의 일대 혁신은 과거 피스톤 엔진을 가스 터빈 엔진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그 덕에 대형 항공기로 안전하게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이끄는 현대차 AAM본부는 세 번째 혁신을 추진 중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동 엔진의 상용화다. 화석연료를 쓰는 헬리콥터는 소음과 배기 가스 탓에 환자 수송용이나 경찰·방송국 헬기만 도심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엔진의 전동화에 성공하면 하나의 배터리로 여러 개의 전동 모터를 돌릴 수 있습니다. 전기자동차처럼, 도심을 누비는 저소음의 친환경 전동 헬기 시대가 열리는 거죠."
공학도 출신인 그는 미국 유학파다.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30년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2008년 동양인 최초로 NASA 워싱턴본부 항공연구총괄본부장을 맡아 12년간 재임했다. 2008년과 2016년엔 미 대통령상을 받았다.
"NASA는 미국인도 선망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직이죠. 항공 분야든 우주 분야든, 그래서 NASA의 구성원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걸 해낸다는 자부심이 강해요."
그는 이들이 무엇보다 인류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NASA는 전 세계에서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는 꿈도 못 꾸는 일이죠. NASA의 구성원은 초년생도 미국을 상징하는 조직에서 일한다는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선택한, 좌표가 뚜렷한 사람들이에요."
그는 민간 기업으로 옮기면 연봉을 2~4배는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NASA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시절 그는 각종 혁신을 해 항공연구부문의 예산을 4억5000만 달러에서 7억5000만 달러로 크게 늘렸다. 보잉사 등 미 항공사들이 이구동성으로 NASA의 항공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백악관과 미 의회도 수긍했다.
"혁신의 요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당연히 새로운 아이디어라야죠. 둘째, 그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것이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아이디어에 대해 시장의 수요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죠."
문제는 항공사들에 과연 어떤 기술 수요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항공사가 원하는 혁신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그는 보잉 측과 신뢰를 쌓은 후 새 항공기에 대한 장기 계획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런 접근은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시사점이 있을까? "한국 정부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순환근무를 하는 거로 압니다. 다양한 업무를 익힐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장기 계획이 변경되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모든 민주 국가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죠."
그는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으면 대학에서도 장기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게 젊은 세대에게 주는 조언을 구했다.
"우리나라는 두 세대 만에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들 탓만은 아니지만,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가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쨌거나 꿈이 없으면 자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한국 사회도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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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이필재 편집위원 ■ 중앙일보 경제부를 거쳐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간중앙 경제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ㆍ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전문기자 등을 지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라-대한민국 최고경영자들이 말하는 경영 트렌드>, <CEO를 신화로 만든 운명의 한 문장>, <아홉 경영구루에게 묻다>, <CEO 브랜딩>, <한국의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등 다섯 권의 CEO 관련서를 썼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기자 및 기자 지망생을 가르친다. 기자협회보 편집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로 있었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