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⑯박정희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의지

청와대 경호실장이던 박종규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 스포츠 외교에 눈 떠 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 후 "올림픽 유치하면 1억달러 이익" 건의 올림픽 개최 계기로 개발 도상국서 선진국으로 도약 하자는 게 박통 생각 79년 박대통령 서거로 유치계획 물거품 위기…전두환 집권 후 불씨 살려

2023-07-05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나는 1974년부터 96년까지 20년 넘게 중앙일보에서 체육 기자로 일했다. 그 말은 정주영 회장이 체육인으로 활동했던 기간과 정확히 겹친다는 얘기다.

정 회장이 81년에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면서 기어코 독일 바덴바덴에서 대역전승을 거두던 순간이나 대한체육회장으로 일할 때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나는 체육 기자 생활 중 농구를 가장 오래 취재했다. 그래서 정 회장의 농구 사랑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대가 경기할 때 장충 체육관과 잠실 실내경기장 VIP석에 앉아있던 정 회장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대한체육회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화 항쟁 진압 후 정권을 잡은 전 대통령이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기 위해 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했고, 정주영 회장이 앞장서서 바덴바덴의 기적을 완성했다'라는 내용이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서울올림픽 유치는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였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올림픽 유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당시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경호실장 출신인 박 회장은 사격연맹 회장이던 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면서 스포츠 외교에 눈을 떴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올림픽을 유치하면 1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득했다.

79년 9월, 서울시장이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나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의 서거로 벽에 부닥쳤다. 신문들은 일제히 '올림픽 유치 어려울 듯'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최규하 대통령은 80년 1월 올림픽 유치 포기를 선언했다.

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계획한 사업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패배주의 발상"이라며 강력한 추진을 주문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뜻은 아니었다. 당시 남덕우 총리는 올림픽 반대론자였다. 경제통인 남 총리는 캐나다 몬트리올이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개최 이후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림픽 망국론'까지 꺼냈다. 더구나 한국의 유일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었던 김택수 위원마저 82명의 IOC 위원 중 서울을 지지할 사람은 고작 서너 명일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국가가 개최하는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은 도시가 개최한다. 따라서 올림픽 유치위원장은 개최 신청 도시의 시장이 맡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서울시장조차 이미 77년부터 유치 준비를 해온 일본 나고야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수수방관했다. 오직 주무 부처인 문교부만 모든 일을 떠맡아 끙끙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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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