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철물상이 개발한 '고무 콘돔'
19세기 초 고무는 겨울에 굳고 여름에 녹아 엉겨 붙는 바람에 쓰임새가 제한 이런 단점 보완위해 '유황과 고무' 버무린 가황 처리법으로 고무의 탄력 유지 고무 덧신, 고무 명함 , 고무 커튼 등 제품에 이어 1855년 고무 콘돔을 선보여
인류사의 은밀한 구석을 뒤져낸 『에로틱 세계사』(난젠 & 피카드 지음, 오브제)를 읽다가 뜻밖의 사실을 만났다. 타이어와 콘돔이 모두 찰스 굿이어란 미국의 한 아마추어 화학자의 '작품'이란 것이었다.
아, 미리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적 타이어 브랜드인 '굿이어'와 찰스 굿이어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찰스 굿이어나 그 후손이 굿이어사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굿이어 타이어는 찰스가 숨진 지 40년이 넘게 지난 뒤 등장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철물상을 하던 찰스 굿이어는 1830년부터 천연고무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고무는 이미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긴 했지만 겨울의 저온에는 딱딱하게 굳어지고, 여름 무더위에는 녹아내려 엉겨 붙는 바람에 쓰임새가 제한적이었다. 신문 등을 통해 화학적 기초지식을 쌓은 굿이어는 이런 단점을 없애기 위한 실험에 몰두했는데 그 통에 가족들의 생계를 도외시할 정도였다.
그러던 1839년 어느날 집을 비웠던 아내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자 당황한 굿이어는 실험 중이던 유황과 고무를 버무린 반죽을 뜨거운 오븐에 숨겼다. 이런 뜻하지 않은 '사고'를 통해 굿이어는 유황을 이용해 고무의 탄력을 유지하는 가황처리법을 발명했다. 꿈에 그리던 소재를 찾아낸 굿이어는 고무 덧신, 고무 명함, 고무 커튼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든 데 이어 1855년 드디어 고무 콘돔을 선보였다. 두께 2밀리미터에 측면에 이음매가 있는 형태였다.
물론 굿이어의 작품이 인류가 처음 쓴 콘돔은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의 아들인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자신의 성병을 옮길까봐 물고기 부레로 만든 콘돔을 사용했다니 말이다. 또한 1564년 이탈리아 의사 가브리엘레 팔로피오는 자신의 저서에서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성관계 시 방수 처리한 아마포 주머니를 이용하라고 권한 바 있다.
게다가 고무 콘돔으로도 세계 최초는 아니었다. 19세기 초 남미의 고무나무 수액을 이용한 원시적 형태의 콘돔이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콘돔이란 말 자체도 유래가 불분명한데, 일설에는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주치의인 콘돔 박사에게서 숫양 내장으로 만든 콘돔을 받은 데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어쨌거나 콘돔은 첫선을 보인 이래 성병과 원치 않는 임신을 막아주는 효과를 발휘해 피임약과 더불어 성 개방 풍조 확산 등 사회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만큼 콘돔 시장은 갈수록 커졌지만 굿이어는 그 열매를 맛보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인 1870년에 이르러서야 콘돔의 대량생산이 이뤄졌으니 그럴 수밖에.
굿이어는 발명가적 기질과 달리 사업적 능력은 떨어졌는지 분쟁 끝에 가황고무 특허를 뺏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화학실험을 너무 많이 한 탓에 건강을 해쳐 말년에 고생하기도 했다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놈이 챙기는'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비록 '굿이어'란 이름은 21세기에도 살아남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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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