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스포츠와 민족주의

쿠베르탱이 보불전쟁서 패배한 프랑스인의 사기 생각해 1896년 근대 올림픽 경기 부활시켜 같은해 독립신문 1면은 "공을 차는데 일본 학생보다 백 배 낫고 英美 아이들과 비스름"논설

2023-06-20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스포츠는 전쟁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예외적인 종목이 있긴 하지만 '힘'을 바탕으로 승패를 가른다는 점에서는 스포츠와 전쟁은 본질적으로 흡사하다.

그러니 구미 열강의 제국주의가 지구촌을 휩쓸던 19세기에 스포츠가 국가주의, 남성중심주의로 흐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체력을 키우고, 단결심과 규율을 익히는 데 스포츠만 한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실제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1896년 근대 올림픽 경기를 부활시킨 시킨 이유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서양에서 들어온 신식 스포츠가 문명과 동일시되고 승리 소식이 민족적 자부심을 키웠다.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 몸싸움이 가능한 단체 구기 종목인 축구는 대중의 피를 끓게 만든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던 U-20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선전을 거듭하면서 새벽이면 잠을 설친 이들이 적지 않았고, 2002년 월드컵 대회 때처럼 광화문 거리 응원이 거론된 사실을 보면 이런 풍조는 여전하다 하겠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스포츠 민족주의 현상을 다룬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천정환 지음, 푸른역사)에서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1896년 12월 3일 자 독립신문 1면에 실린 논설을 언급하는데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조선이 암만 하여도 나라가 안 되겠다고 하여도 우리는 말하기를 조선이 암만 하여도 나라가 되겠다고 하노라."

글쓴이가 조선이 당당한 근대적 독립국가가 되리라 낙관한 근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토론 방법을 배워 서구 사람 못지 않게 민주적으로 당당히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가 바로 문제의 축구였다. 관립 영어학교 학생들이 오후면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데 달리는 거나 투쟁심 등 그 활달한 고동이 일본 학생들보다 "백 배 낫고" 미국·영국 아이들과 "비스름하다"는 것이 나라의 장래가 밝다는 증거로 들었다.

이 기사가 나온 때는 도도한 외세의 물결로 나라의 운명이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였다. 불과 일 년도 안 되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청의 입김에서 벗어난 자주독립국임을 내외에 알렸으나 대한제국 역시 그 뒤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어쨌거나 당시 스포츠는 단순히 몸을 쓰는 유희가 아니었다. 서구와 우리,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는 잣대 구실을 했으니 1895년 공포된 첫 번째 학부령(현 문교부령)에 체조가 당당히 법정 교과목에 포함되었을 정도였다. 이어 관립 학교를 필두로 민간의 신식 학교를 통해 체조와 축구, 야구가 보급되기 시작해 심지어 신식 서당에서도 체조를 가르치기도 했단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축구 강국'과 '선진국'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에 축구 솜씨로 나라의 장래를 점쳤다는 것이 희한하기는 하지만, 한때는 스포츠가 근대 국력의 상징 징표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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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