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⑤ 까마귀와 참새의 '기술 차별화'
아르키메데스 원리 활용한 까마귀의 먹이습득 과정 英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이 입증 지적 자본은 무한정 공급이 가능…MS처럼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성공한 기업들 많아 하이테크산업은 기술의존도 높고 연구개발 비용이 많지만 사용자 늘면서 독과점 향유
까마귀와 참새가 사막을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무더운 먼 길을 날았기에 거의 파김치가 됐습니다. 목이 마른 참새가 까마귀에게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말했습니다.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낮게 날았습니다. 한참을 비행하다가 이윽고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까마귀와 참새는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고 땅에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물은 바짝 말라 텅비었네요. 둘은 한참 돌다가 우물가에 가지런히 놓인 물병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참새는 포기하고 이내 다른 곳으로 가보자며 까마귀를 졸랐어요. 왜냐면 호리병 모양의 물병에 참새든 까마귀든 부리를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안 참새는 목이 말랐지만 물 마시는 일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까마귀는 한참 고민했습니다. 이리저리 물병 주변을 돌던 까마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는 풀숲에서 작은 돌들을 찾아내고는 이를 물어다가 호리병에 넣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물병에 작은 돌들을 넣을 때마다 물은 점점 까마귀에 부리에 다가왔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낸 까마귀는 마침내 기분 좋게 꿀처럼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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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호리병 속 물을 먹기 위해 짜낸 지혜는 '아르키메데스 원리'입니다. 아르키메데스 원리는 물 속에 물체를 넣으면 그 물체와 같은 부피만큼의 물이 흘러 넘치고, 흘러 넘친 물의 무게만큼 물체가 가벼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낮은 새가 초등학교 고학년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활용한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7살 어린이 지능 가진 까마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지난 2009년 이솝우화의 까마귀와 똑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15cm 높이의 물병에 절반 이하로 물을 담고 먹이를 띄워놓았습니다. 부리가 먹이에 닿지 않아 물병 주위를 맴돌기만 하던 까마귀는 연구진이 조약돌들을 넣어주자 하나씩 집어넣어 수위를 올린 후 냉큼 먹이를 입에 물습니다.
과연 까마귀가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번에는 크기가 다른 조약돌을 섞었습니다. 그랬더니 까마귀는 조약돌 가운데 비교적 큰 돌만을 골라 물 속에 넣은 후 먹이를 입에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통과 톱밥이 담긴 통에 각각 먹이를 넣어두었더니 까마귀는 톱밥통 대신 물통에 돌을 집어넣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할 만큼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까마귀는 7세 어린이와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과 해코지를 한 사람을 가릴 줄 알고, 동료가 죽으면 장례식도 치른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지적 자본이 풍부한 조류입니다. 지적 자본은 지식과 기술을 말하는 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생산요소의 하나로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하이테크 산업의 핵심 가치입니다. 하이테크 산업에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우주항공, 통신장비, 생명공학 등이 속합니다.
생산성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더 많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산에 필요한 자원 중 토지, 노동은 공급에 한계가 있습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농업과 전통 제조업에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자원 투입이 증가할수록 추가되는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적 자본은 다릅니다. 한번 썼다고 사라지지 않고 무한정 공급이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적 자본을 활용한 산업은 생산량이 어느 시점에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른바 '수확체증의 법칙'입니다.
수확체증의 법칙은 수학적으로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3개 있으면 3개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조합의 수는 6(3x2x1)개이지만 이 기술이 5개로 늘어나면 조합은 120(5x4x3x2x1)개나 됩니다.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회사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라는 프로그램 개발에 5000만 달러를 투입했습니다. 디스크 한 장을 개발하는 데 우리나라 돈으로 570억원을 쓴 것입니다. 이후 한 개씩 추가로 개발하는 데는 약 3달러(3500원)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익도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윈도가 성공한 이유는 시장을 선점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윈도보다 안전성이 훨씬 우수한 프로그램 '0S2'가 나왔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윈도를 사용하다 보니 결국 모두 윈도 쪽으로 몰렸습니다.
하이테크 산업의 특징은 첫째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공장 출고까지 기술의존도가 높고 초기 연구개발 비용이 매우 높지만 추가 생산에 드는 비용이 매우 적습니다. 이건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에서 확인했죠. 둘째는 제품 사용자가 적을 때에는 사용가치가 별로 없지만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사용가치도 급상승합니다. 이걸 '네트워크 효과'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팩스를 혼자만 쓸 때엔 그저 그런 기계에 불과하지만 사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쓰면 없어선 안될 보물이 됩니다. 스마트폰 사용자끼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카카오톡이 크게 히트를 친 배경이기도 하죠.
셋째는 하이테크 제품은 그 사용법을 익히기가 매우 어려워 소비자는 한번 선택하면 좀체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려 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전환비용이 높아 고착효과가 발생합니다. 온라인 카페에서 사귄 친구가 많은데 다른 카페로 옮기면 기존 친구를 포기(전환비용)해야 해 그대로 머물러 있게(고착효과)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바로 이 전환비용과 고착효과 때문에 플랫폼 비즈니스에선 '벤치마킹'을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벤치마킹이란 남의 장점을 본따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데, 중요한 경영전략 중 하나입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네트효과가 큰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같은 인터넷 기업을 말합니다. 과연 페이스북을 모델로 해서 새로운 SNS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할 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엄청난 초기 개발 비용과 소비자의 고착효과 등으로 이미 생태계를 구축한 플랫폼 비즈니스는 벤치마킹이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결국 수확체증의 법칙은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독과점을 초래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다른 말로 '승자독식'이라고 합니다. 전통 제조업에서도 독과점의 폐해가 커 갖가지 규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독과점 기업은 제품 가격을 쥐락펴락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칩니다. 또 힘없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시장을 파고들면서 사회 문제를 일으킵니다. 최근들어 각국 정부가 하이테크 기업에 대해 반독점 규제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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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