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⑫ 쌀집 할머니의 타계
1989년 94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비서진 대동없이 나홀로 빈소 찾아 연심 품었던 在美고모 만나 건강 묻고 아산병원서 사흘간 검진 배려
쌀집 아주머니 차소둑 할머니는 의 1989년 9월 30일, 만 94세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는 병원이 아니라 모시고 살던 아들 집(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서 치렀다.
정주영 회장은 할머니의 부음을 듣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現代그룹 회장 鄭周永'명의의 조화를 빈소에 보냈다.
이틀째 되던 날, 정 회장이 불쑥 빈소로 찾아왔다. 비서 등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정 회장은 할머니 영정 앞에서 정중히 절을 하더니 한참 동안 영정을 바라보았다. 상주들은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할머니를 챙겼던 정 회장이 직접 조문까지 와준 데 대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더구나 당시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소련과의 경제교류가 무르익어 가던 시절이었다. 소련과의 경제협력 주역이 정 회장이었고, 10월 3일에는 출국이 예정되어 있어 준비에 바쁠 때 였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바로 가지 않고, 10분 정도 앉아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상주들과 공유했다.
정 회장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며느리인 나의 어머니가 "9월 초부터 밥을 드시지 못해 미음을 드시다가 일주일 전부터는 미음도 드시지 못 했다"라는 설명에 정 회장은 눈을 감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인가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정 회장이 밖에 왔으니 대문을 열어두라'라고 하셨다"라고 말하자 울컥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 앉아있던 정 회장이 일어서자 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모시고 가서 배웅해드렸다. 그런데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간 정 회장이 급히 돌아왔다. 깜짝 놀란 상주들이 "혹시 놓고 가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하고 나왔어." 그러곤 다시 영정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수행 비서 없이 혼자 조문하러 온 재벌 총수,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돌아 온 정 회장의 배려에 저절로 존경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 회장의 배려는 또 있었다. 이날 상가에는 고모도 미국에서 와있었다. 10여 년 만에 고모를 다시 만난 정 회장은 매우 반가워 했다. 얘기하던 도중 고모가 가슴이 좀 답답하다고 하자 정 회장은 증세가 어떤지 자세히 물었다.
할머니의 5일 장이 끝난 뒤 현대 비서실에서 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정 회장의 지시라며 아산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고모는 아산병원에 사흘 동안 입원해있으면서 정밀 종합검사를 받았다. 고모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정 회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했음은 물론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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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