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김신권 창업주 '약업70년'여정 담은 역사관

(개관 55주년 맞은 '기업박물관 1호' 한독의약박물관 현지 르포) 국내외 희귀 제약 고서적과 기구 등 1만여점 보유… 허준 동의보감 등 보물급 문화재 다수 김 창업주, 문화유산 보존과 노조설립 권유로 훈장 2개 수훈 눈길… 애장 유물은 별도전시

2019-09-04     음성(충북)=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한독의약박물관에는

한독의약박물관은 한국의약의 발자취는 물론 김신권 창업주의 ‘제약70년 일생’의 궤적을 고스란히 살필 수 있는 곳이다. 평북 신의주가 고향인 그는 압록강을 오가며 국경 행상을 다가 약 한번 제대로 못쓰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그래서 말년에는 신의주가 보이는 단둥으로 ‘황혼 여행’을 갔다.

거기서 자신이 약종상 시험(약국개업 자격테스트)에 도전했던 당시를 떠 올렸다. 그는 만주의 약국에서 보조업무를 하면서 약종상 강의록<오른쪽 아래사진>을 끼고 살았다. 주경야독 끝에 1940년 19세 최연소로 합격했다. 만주정부에서 약종상 허가를 받은 첫 한국인이 됐다.

김신권

만주에서 금원당(金垣堂)이란 약국을 차려 약업에 재미를 붙이던 그는 해방과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빈손이 됐다. 하지만 주변의 신뢰를 쌓은 덕에 재기 할수 있었다. 김 창업주는 변변한 국산의약품이 없는 현실을 한탄했다. 그래서 단신으로 독일로 무작정 건너가 세계적 제약업체인 훽스트사와 기술제휴에 이어 합작회사를 일궜다. 그게 1954년 세운 한독약품(나중에 한독으로 개명)이다. 선진 제약설비를 갖춰 국내 제약사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수 있는 밑돌을 놓았다.

한독의약박물관은 그래서 한독과 김신권 창업주의 역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김 창업주는 40대에 독일을 자주 갔는데 한번은 하이텔베르크의 '약학박물관‘을 둘러 보고 감화됐다. 그래서 귀국하자 마자 국내외 의약관련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창립 10주년이던 1964년 박물관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박물관이자 기업박물관 1호다.

1940년

선진국으로 가려면 기업문화가 제대로 꽃을 피워야 한다고 믿었다. 이 박물관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여럿 있다. 먼저 허준의 동의보감 초간본과 인쇄 목판이 있다

 또 국내 유일본인 ’의방유취‘ (보물 제 1234 호 , 조선 ), ’청자상감상약국명합 (보물 제 646 호 , 고려 )‘ 등 보물 6 점을 비롯해 기원전 2 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약솥 ,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약방문 (처방전 ), 일제시대의 은단통 , 19 세기 독일의 청진기와 보청기  등을 갖고 있다. 대원군의 사저인 운형궁에서 쓰던 약연기(약재를 가는 기구)도 만날수 있다.

구한말

이밖에도 진귀한 국내외 약조제기와 다양한 의료기구도 전시됐다. 이는 김 창업주가 국내는 물론 , 독일ㆍ 프랑스ㆍ  이태리 ㆍ 스페인 등 유럽 각국을 순방하면서 의약 유물을 모은 것이다. 박물관측은 전시품목이 1만여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한독의약박물관은 국내실과 국제실 두 곳으로 나눠져 있다. 국제실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19세기 독일의 약국 모습과 페니실린을 발견해 인류를 구한 프레밍의 연구실을 원형의 모습대로 꾸며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있다. 

박물관의

김 창업주는 기업인으론 드물게 1998 년 전통문화보존 및 박물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보관장을 받았다. 의약박물관에는 김 창업주의 호(제석)를 딴 제석홀이 별도로 있다. 이 공간은 김 창업주가 틈틈히 모은 고려청자 등 국내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그는 생전에 “내가 사서 모으긴 했지만 의약박물관이나 제석홀에 있는 모든 전시품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라며 박물관의 소유를 자신이 설립한 공익법인인 한독제석재단에 넘겼다.

김신권

김 창업주는 바른 경영에 힘썼다. 먼저 사람을 중시했다. 그는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 것"이라며생산직 직원들에게 “선진국에는 다 노조가 있더라”라며 노조설립을 권유했다. 사주가 앞장서 한독노조가 1975년 세워졌다. 그때부터 한독은 임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은 물론 무료 사내식당 등 한발 빨리 사원복지체제를 갖췄다. 그가 1981년 노사협조 증진의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배경이다. 또 1970년 독일로 비즈니스 출장을 떠났을때 현지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들이 깍두기 김치가 그립다고 말하자 그는 귀국하자마자 3,000 여통의 통조림 김치를 보낸 따뜻한 경영인이었다.

지난 4월30일 김 창업주의 서거 5주기 행사가 바로 이 의약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의 장남인 김영진 한독 회장은 선친의 유업을 잇겠다는 의지를 이처럼 밝혔다.. 

 “저의 아버님이자 한독의 창업주인 김신권 회장은 6.25전쟁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제약산업을 일궈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일조하셨다. 무엇보다 한독을 존경받는 기업으로 키우고자 했던 선친의 뜻을 마음 깊이 새기고 지켜나갈 것입니다.”